[천자칼럼] 남산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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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이었을까. 걸어서 남산을 올라가 본 게.며칠 전 가까운 이들과 서울 남산을 걸었다. 장충동 국립극장 입구에서 출발,국궁 연습장인 석호정과 조지훈 시비(詩碑)를 지나 케이블카 정거장 건너편 계단으로 팔각정까지 올랐다 내려와 반대편 순환도로로 출발지까지 돌아오는 코스였다.
늦가을 남산은 아름다웠다. 낙엽을 밟으며 곱게 물든 나무 아래를 걷는 마음은 헉헉거리며 앞사람 등이나 엉덩이만 보고 올라가야 하는 산행과 달리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자동차는 물론 이륜차도 없는 길엔 시각장애인들의 평화로운 발길이 이어지고 연인과 가족들의 속삭임은 정겨웠다.
오르막길에 들어서기 전 길가 벤치에서 쉬는 동안 모임의 회장이 내놓은 단풍차는 모두의 가슴을 쳤다. 부인이 고르고 고른 예쁜 단풍잎을 깨끗이 씻어 말리고 쪄서 다시 말린 다음 뜨거운 물에 우려냈다는 차였다. 붉은 기운이 살짝 도는 맑은 차에 단풍잎이 띄워진 컵을 받아든 이들의 얼굴엔 감탄과 고마움,흐뭇함의 표정이 넘쳤다.
팔각정 옆 전망대 난간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의 징표로 매단다는 자물쇠가 가득했다. 먼훗날 함께 확인할 커플이 얼마나 되려나. 내려오는 도중 일행들의 얘기는 한결같았다. "뭐 한다고 남산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을까"라는 것이었다. 개중엔 40년 만에 처음 올라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자동차 정비사 카터는 오래 전 헤어진 딸과 화해하지 못하는 사업가 에드워드에게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며 이렇게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군.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다른 하나는 네 인생이 남에게 기쁨을 줬는가라네."
죽음에 이르면 스스로 나는 결코 '아무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아무나'인 사람의 가치 모두 같은 잣대로 평가된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 가끔은 왜 사는지,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무엇인지,남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남산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 무심하게 버려둔 건 없었는지도 돌아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늦가을 남산은 아름다웠다. 낙엽을 밟으며 곱게 물든 나무 아래를 걷는 마음은 헉헉거리며 앞사람 등이나 엉덩이만 보고 올라가야 하는 산행과 달리 편안하고 여유로웠다. 자동차는 물론 이륜차도 없는 길엔 시각장애인들의 평화로운 발길이 이어지고 연인과 가족들의 속삭임은 정겨웠다.
오르막길에 들어서기 전 길가 벤치에서 쉬는 동안 모임의 회장이 내놓은 단풍차는 모두의 가슴을 쳤다. 부인이 고르고 고른 예쁜 단풍잎을 깨끗이 씻어 말리고 쪄서 다시 말린 다음 뜨거운 물에 우려냈다는 차였다. 붉은 기운이 살짝 도는 맑은 차에 단풍잎이 띄워진 컵을 받아든 이들의 얼굴엔 감탄과 고마움,흐뭇함의 표정이 넘쳤다.
팔각정 옆 전망대 난간엔 젊은 연인들이 사랑의 징표로 매단다는 자물쇠가 가득했다. 먼훗날 함께 확인할 커플이 얼마나 되려나. 내려오는 도중 일행들의 얘기는 한결같았다. "뭐 한다고 남산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살아왔을까"라는 것이었다. 개중엔 40년 만에 처음 올라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자동차 정비사 카터는 오래 전 헤어진 딸과 화해하지 못하는 사업가 에드워드에게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며 이렇게 말한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군.하나는 인생에서 기쁨을 찾았는가,다른 하나는 네 인생이 남에게 기쁨을 줬는가라네."
죽음에 이르면 스스로 나는 결코 '아무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아무나'인 사람의 가치 모두 같은 잣대로 평가된다는 얘기다. 우리 모두 가끔은 왜 사는지,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무엇인지,남을 얼마나 기쁘게 하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남산처럼 너무 가까이 있어 무심하게 버려둔 건 없었는지도 돌아보고.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