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게이트 불빛이 등 뒤로 사라지고

실내등은 꺼졌다. 먼지 쌓인 차 안에서

손가락은 더듬더듬 테이프를 꽃는다

피로 속에 서늘하게 젖어드는 음악

(…)

밤새도록 트레일러를 끌고 가는 화물 기사처럼 피로에 젖어 달려가고 있을 뿐.앞차를 바짝 따라붙고

때로는 추월해간 무수한 등성이들

창문을 열면 투명한 전자들의 소나기처럼

이마를 씻어주는 푸른 은빛의 공기

(…)

더 달려야 한다. 나 혼자 더 멀리

허혜정 '밤의 고속도로' 부분

밤의 고속도로처럼 삶은 흘러간다. 길 위엔 숨쁜 질주만이 있다. 무섭게 달려드는 뒷차에 길을 내주고 때론 앞차를 따라 붙는다. 곤두박질치듯 내리막길을 지나고 등성이를 넘는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피로. 그래도 끈질기게 하루를 마쳐야 한다. 고단한길 저 편에서는 무엇이 기다릴까. 그것은 알 수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었는데 떼밀려가기만 한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멀리 와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