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 불황기를 보낸 일본. 일본 투자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하고 있는지 김택균 기자가 일본 현지를 직접 취재하고 왔습니다. #1. 고객을 잡아라 전자상가가 밀집해 있는 도쿄 아키하바라. 상가마다 고객 유치 경쟁이 뜨겁습니다. 인기 MP3플레이어를 정가의 10분의 1 가격에 판매하기도 합니다. 한 쪽에선 100엔짜리 PC도 등장했습니다. 모두가 인터넷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판촉 전략입니다. 하지만 고객을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 손엔 게임기, 또 한 손엔 휴대폰을 들고 있는 모습이 시장이 포화 상태라는 사실을 잘 말해줍니다. 전자상가 점원 "휴대폰 판매가 많이 줄었습니다. 일본 인구가 늘지 않는데다 이미 대부분이 갖고 있기 때문에 판매가 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쪽에선 중고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끕니다. 전자상가 점원 "성능만 좋으면 가격이 싼 중고 제품을 많이 선호하는 편입니다." #2. 얇아지는 청춘 지갑 '도쿄 패션의 1번지'로 불리는 하라주쿠. 주말을 맞아 쇼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분주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지갑은 예전보다 많이 얇아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차갑기만 합니다. 미까미(42)/ 신발가게 상인 "최근 일본 제품이 싼 편이지만 경제가 점점 힘들어지면서 잘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버블이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 역시 조금씩 나빠지고 있습니다. 니시야마 도모(33) / 시민 "매일 먹는 빵이나 치즈같은 식료품 값이 비싸다는 것을 느낍니다." 치오야(66) / 시민 "제가 시골 사람이라 그런지 전반적인 분위기가 도시보다는 시골에서 무너지는 회사가 많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경제적 차이가 많이 납니다." #3. 불황 모르는 명품거리 거리를 수놓은 명품 상가들. 명품 쇼핑백을 손에 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곳이 바로 일본의 대표적 명품 거리인 오모테산도입니다.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는 이 곳에서 불황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선진국일수록 부의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들 명품족의 그치지 않는 소비가 일본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명품족들에게 글로벌 금융 위기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도쿄 시민 "바뀐 게 없습니다. 경제적으로 바뀐 게 전혀 없습니다." 와타(22) / 도쿄 시민 "지금 특별히 느끼는 건 없지만 앞으로 점점 경제적으로 압박이 심해지면 영향을 받을 겁니다. 일반 시민이 언론 보도를 보고 동요하는 것 뿐이지 실제로는 영향이 없다고 봅니다." #4. 차분한 도쿄증권거래소 일본 금융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있는 도쿄 가부토쵸 거리.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도쿄 증권거래소는 이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니케이 지수가 26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지난달 27일. 역사적 사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언론사의 취재 경쟁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차분합니다. 폭락에 대한 공포감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5. 장기투자 펀드 인기 "안녕하세요! 사와카미 투신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10년 넘는 장기투자 펀드를 운용하는 사와카미 투신. 니케이 지수가 8% 넘게 폭락한 날이지만 펀드 가입을 문의하는 전화가 끊이질 않습니다. 10년 전 이 회사를 설립하며 일본의 워렌 버핏으로 우뚝 선 사와카미 아스토 사장. 그의 얼굴에서 증시 폭락으로 인한 근심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금융 위기와 상관없이 실물 경제는 꾸준히 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사와카미 아스토/ 사와카미 투신 회장 "7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해마다 4% 정도 성장해왔고 최근에는 5%쯤 성장하고 있는데 금융 위기가 있어도 실물 경제가 성장하는데 달라지는건 없습니다. 위기가 얼마나 큰지와는 상관없이 실물 경제가 계속 성장해 왔다는 것을 이해하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6. 흔들리지 않는 개인투자자 한 장기투자 펀드 운용사가 개최한 투자 강연장. 지방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스이 야스히로씨는 투자 정보를 얻기 위해 이 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자산의 4분의 1 정도를 금융 자산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스이 야스히로(44) / 개인투자자 "계산한 적은 없지만 주식이나 투자신탁만 놓고봤을 때 다소 손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속 관련쪽에도 투자하고 있어 전체로는 본전 수준입니다. 주가는 원래 올랐다 내렸다 하기 때문에 저는 그것에 흔들리지 않고 투자하려고 합니다." #7. 늘어나는 온라인 증권고객 도쿄 금융가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자리한 일본 4위의 온라인 증권회사 카부닷컴증권. 주식계좌 개설 문의 전화를 받느라 콜센터 직원들이 분주합니다. 이 증권사는 신규가입 고객이 연초 대비 두배 늘었습니다. 증시 폭락기를 투자 기회로 생각하는 투자자가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야마다 츠토무/카부닷컴증권 시장분석 애널리스트 "오늘도 정부가 긴급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는 등 최근 한 달새 다양한 대책들을 내놨습니다. 앞으로 일본 은행이 주식 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등 지금 당장은 주가가 내리더라도 앞으로 호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8. 위기의 한국증시를 노크하다 교포 3세가 경영하는 한 중소기업. 중고 PC를 사들여 개인 정보를 안전하게 삭제한 뒤 재판매하는 독특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번달 한국 증시에 상장합니다. 증시 폭락을 위기로 생각하고 잇따라 상장을 철회하는 한국 기업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아스카와 코우/ 티스퓨쳐 대표이사 "증시가 폭락해 공모가가 줄어드는 단점도 있지만 잇점도 많다고 봅니다. 첫 일본기업이라는 점에서 언론의 주목도 받고 있고 사업 제휴를 희망하는 곳으로부터 많은 연락도 받고 있습니다." #9. 환율·부동산, 한국의 아킬레스건 이웃나라 일본은 금융위기 공포에 빠져있는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역시나 우리의 취약한 외환 시장에 대한 우려를 빼놓지 않습니다. 야마다 츠토무/카부닷컴증권 시장분석 애널리스트 "일본도 어렵지만 한국은 더 심각할 것입니다. 양국 주가가 똑같이 떨어지는 추세지만 일본은 엔화가 강세라서 큰 문제가 없지만 한국은 원화가 떨어지고 있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버블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사와카미 아스토/ 사와카미 투신 회장 "일본과 한국의 인구가 줄고 있지만 주택은 충분히 지어져 있습니다. 일본에는 비어있는 집이 12%에 달하는데 한국도 비슷할 겁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주택을 사면 자산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의 집값이 예전에 비하면 많이 올랐습니다. 팔기에는 좋겠지만 실수요자 측면에서 볼 때는 비싼 편입니다." #10. 금융위기는 기회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태풍에 휘말리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일본 금융 시장. 하지만 일본인들에게서 한국처럼 공황에 가까운 불안감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어쩌면 10년이라는 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자신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금융 위기로 전세계가 불안해하고 있지만 이곳 일본 투자자들은 위기 다음에 찾아올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침착한 마음으로 시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WOW-TV NEWS 김택균입니다. 김택균기자 tgkim@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