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뚝이같은 소신파 정치인 끝내 쓰라린 눈물
72세 고령..상원 복귀냐 애리조나로 귀거래사냐

5년 간의 전쟁포로 생활을 극복해 낸 `베트남전 영웅', 비주류 소신파인 `매버릭'에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오뚝이처럼 비약해온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에게 `기적'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변화와 희망을 화두로 내세운 버락 오바마 당선인의 거침없는 질주와 사상 첫 흑인대통령을 탄생시킬 정도로 변화를 갈망하는 미국 사회 저변의 도도한 흐름앞에 고비때마다 열세를 딛고 도약을 거듭해온 72세 노 후보가 기대했을 9회말 대역전극은 실현되지 않았다.

언론 매체들이 모든 경우의 수를 가정해 제기했던 `브래들리 효과'나 `부동층 결집' 등 막판 변수들도 그야말로 지상(紙上)분석에 그쳤을 뿐이다.

해군장교, 전쟁 포로, 두 번의 결혼 등 파란만장한 삶을 토대로 하원 및 상원의원 6선을 거쳐 지난 2000년에 이어 두번째 도전에 나선 그의 대권 등정은 8부능선까지는 `컴 백 키드'라는 별명답게 고비때마다 저력을 발휘해 돌파하는 뚝심을 과시했다.

인기없는 이라크전에 대한 강력한 지지 입장으로 작년까지만해도 당내 지지도에서 거의 꼴찌로 처지던 매케인은 올해 첫 경선인 1월초 아이오와 코커스에서도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에게 패하며 3위로 출발했으나 2000년 부시를 제치고 예상 밖의 1위를 차지했던 '희망의 땅' 뉴햄프셔에서 다시 승리해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이후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 '슈퍼 화요일' 결전에서 연승해 대세를 결정짓고, 2위였던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 후보 지명을 사실상 확정한 뒤 9월4일 미네소타주 세인트 폴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집권여당의 대선후보로 등극했다.

특히 전대 직전에 지명한 새라 페일린 부통령 후보와의 공동 바람몰이를 통해 9월초 한때 오바마 후보를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등 깜짝 전대효과를 누리기도 했으나 이후 9월 중순부터 월가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인해 여론조사에서 밀리기 시작한 이후 회복 기미를 보이지 못한채 주저앉게 된 것.
매케인이 선거당일까지 유세를 하는 강행군도 빛을 발휘못하고 맥없이 쓰러지게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리처든 닉슨 전 대통령이 하야할 때보다도 낮은 26%의 지지율로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대선후보라는 본질적 한계가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부시 행정부가 주도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계속되는데 따른 염증이 어느 때 보다 높아 유권자의 3분의 2가 고개를 절래 흔들 정도이고, 여기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어 터져나온 막판 금융위기는 `천하의 제갈량'도 어쩔 수 없는 선거환경을 만든 셈이다.

오바마 진영은 특히 "매케인이 당선되면 부시 3기 정부가 된다"며 부시 행정부와 매케인을 일체화시키는 `맥부시 전략'을 집중 구사해 유권자들 사이에 `바꿔 열풍'을 점화시킨 반면 매케인 진영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특장이었던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는 소신파'라는 매버릭 이미지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보수성향의 기독교 복음주의자 등 당내 보수파 및 부시 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시도하면서 개혁적 이미지가 완전히 퇴색해 버리는 등 생명력을 잃었다.

여기에 종반 선거전을 휩쓴 금융위기 사태때 부시 대통령에 맞서 구제금융안에 반대하지 않는 등 부시와의 차별화를 위한 결정적 기회를 놓쳐버린 점도 악수로 지적되고 있다.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경험이 일천한 새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낙점한 것도 실책중 하나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낙태에 반대하고, 총기소지를 지지하는 보수적 성향의 페일린 기용으로 그동안 선거운동에 소극적이던 공화당내 보수파들을 움직이게 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지만 전체 유권자들은 페일린이 부통령 자격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많이 내리면서 매케인은 `정치적 기회주의자'로 비치게 됐다는 지적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CBS 뉴스와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 페일린이 부통령직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59%에 달했다면서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선택한 것이 매케인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고 분석할 정도였다.

이밖에 3차례 TV토론을 통해 자신의 풍부한 경험을 집중 세일즈하며 오바마가 `준비가 안돼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실패하고, 금융위기 당시에도 국민을 안심시킬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채 실수만 연발했고, 막판에는 `색깔론' 등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의존하는 구태의연한 선거전략도 도마위에 올랐다.

결정적 패인이 무엇이든 대권 재수에 실패함으로써 날개가 꺽인 매케인이 올해 72살의 고령이어서 향후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는 게 중론이다.

터커 바운즈 매케인 대변인은 지난 10월말 비록 대선승리를 강조하는 맥락이기는 하지만 "매케인은 상원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매케인은 미 대통령이 될 절대적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장담했다.

이에 따라 파란만장한 워싱턴 생활을 접고 고향인 애리조나로 돌아가는 `귀거래사'를 준비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선패배의 충격을 추스린 뒤 2004년 대선에서 패한 존 케리 상원의원처럼 내년 초부터 의회에 다시 합류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대선은 물론 상.하원 선거에서 모두 패해 초상집 분위기인 당내 상황으로 볼 때 대선 인책론 등도 제기될 가능성이 높아 과거와 같은 지도력은 발휘하기 힘들것이란 게 지배적 관측이다.

(애틀랜타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