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꼬이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돼 좋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을 때,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이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충동을 느낀다. 남을 탓하면 자신의 책임이 벗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탓할 대상이 많아진다. 심지어는 하늘 탓,조상 탓을 들먹인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내 탓'은 없고 모두가 '네 탓'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댄다. 둘러대는 것도 모자라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경제위기를 맞고서도 네 탓 타령이다. 여당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면 야당에선 '잃어버린 10개월'이라고 맞받아친다.

누구를 탓하는 것은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인데,도를 넘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정내 불화는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주가가 폭락하고,펀드 수익률이 떨어지고,부동산 가격이 추락하면서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있어서다. 투자해서 손해를 본 것은 순전히 '당신 때문'이라며 이혼신청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가족문제상담소의 증언이다. 부부관계가 사랑이 아닌 돈으로 변질되는 실상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 남의 탓만을 하는 풍조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10여년 전 천주교평신도협의회에서 '내 탓이오'하는 캠페인을 벌인 것도 사람들의 이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전에 실시했던 '똑바로'운동도 마찬가지였다.

'너 때문에'하며 남의 탓으로 몰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 당장 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곧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탓임을 인정할 때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고 변화를 꾀해 나갈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여서다. 남의 탓을 한다고 해서 꼬인 문제가 풀리고 홀가분하게 짐을 벗는 것도 아니다.

네 탓은 '불행의 씨앗'이요,내 탓은 '행복의 출발'이라는 의식 전환이 아쉽기만 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