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은 1980년대 발전사업을 시작한 이후 20여년간 새 프로젝트 추진 때마다 프랑스 알스톰과 손잡아야 했다. 독자 수주는 물론 발전소 개ㆍ보수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천기술이 없었던 탓이다. 두산그룹은 특유의 문제해결 방식을 동원했다. 원천기술을 가진 100년 전통의 '밥콕'이라는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밥콕은 화력발전용 보일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했음에도 1995년 일본 미쓰이그룹에 편입된 뒤 성장이 정체된 상태였다. 미쓰이그룹은 200억엔(당시 환율 1600억원)에 지분 100%를 두산에 넘겼다. 미쓰이가 경영에 실패한 회사를 두산이 회생시킬 수 있을까하는 우려도 있었지만,기우로 바뀌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국 글래스고에 본사를 둔 두산밥콕의 박흥권 최고운영책임자(COOㆍ상무)는 "밥콕은 두산그룹 해외 기업인수ㆍ합병(M&A)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강조했다. 두산중공업이 밥콕을 인수한 것은 2006년 11월.전년도 4억3000만파운드(약 9500억원)였던 매출액은 2006년 4억1100만파운드(약 9000억원)로 줄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840만파운드에서 800만파운드로 쪼그라드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산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수주액이 전년 대비 53% 늘어난 7억7100만파운드에 달했고 올해는 10억파운드를 웃돌 전망이다. 인수 전 1~2%대였던 영업이익률은 올해 6%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인수 당시 4700여명이던 종업원은 5400여명으로 늘었다.

이안 밀러 두산밥콕 사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요인으로 적극적인 연구개발(R&D) 투자를 꼽았다. 미쓰이는 조선업을 주력으로 삼았던 탓에 밥콕에 대한 투자를 우선순위에서 제쳐놓았지만 두산중공업은 달랐다. 인수 즉시 연간 R&D 비용을 전년도의 5배 규모인 600만파운드로 증액했다.

엔지니어링그룹 산하조직으로 묻혀 있던 연구인력들을 뽑아내 R&D 센터도 따로 세웠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자 발주회사들의 인식도 바뀌었고,대형 수주도 잇따랐다.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 것도 두산밥콕을 일으켜 세운 주요인이다. 밀러 사장은 "미쓰이그룹 시절에는 홀로 버텨야 했지만 지금은 같은 사업에 종사하는 큰 그룹의 일원이라서 편하게 일한다"고 말했다.

두산밥콕 R&D센터에서는 'AD(advanced) 700'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현재 590도가 한계인 화력발전용 보일러의 온도를 700도까지 높이는 작업이다. 이렇게 온도를 높이면 같은 양의 석탄을 때더라도 에너지 효율이 55%가량 개선되고,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30% 정도 줄어든다. 밀러 사장은 "대체에너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앞으로 상당 기간 전 세계 발전용량의 50% 이상을 석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며 "효율이 높으면서도 환경오염이 적은 화력 발전 시스템을 개발해 2020년까지 30억파운드(약 6조원) 이상의 수주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래스고(영국)=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