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자들 금리인하 아직 실감못해

예금금리는 앞다퉈 내리기 시작

한국은행이 한 달 새 기준금리를 1%포인트 내렸지만 시중금리 인하 폭은 그에 미치지 않고 있다. 특히 은행 대출 금리를 좌우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와 은행채 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발표 이후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한은의 금리 인하 약발이 잘 먹혀들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한은은 이 때문에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 CD나 단기 은행채 물량을 소화하도록 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수급요인으로 인해 이런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은행의 자금 사정이 나아지면 모든 시중 금리가 대세 하향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본래 저금리 시대가 반가운 것은 대출금리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간 CD 금리가 급등해 대출자들은 늘어나는 이자부담에 한숨만 내쉬던 터였다. 이들에게 기준금리 인하는 그야말로 희소식이었다. 실제 한은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전격 인하한다고 발표한 10월27일, CD 금리는 연 6.18%에서 연 6.04%로 0.14%포인트 급락했다. 5개월여 만에 하락세로 반전된 것이다. 하지만 안도감은 하루 만에 탄식으로 돌변했다. 다음날 CD 금리는 0.01%포인트 오른 데 이어 그 다음날도 같은 폭으로 상승했다. 그러다 한은이 만기 91일물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형식으로 시중에 1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하자 CD 금리는 다시 연 5%대로 급락했다.

이승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증권사들이 가지고 있던 국고채를 한은에 팔고 CD를 사면 그만큼 차익을 남길 수 있어 CD 수요가 살아난 게 CD 금리 하락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단기 은행채 금리도 같은 추이를 보였다. 만기가 3개월 남은 은행채 금리는 기준금리가 떨어지는 날 연 6.34%(민간 신용평가사 평균)에서 연 6.16%로 하락했지만 이후 다시 조금씩 오르다 31일 큰 폭으로 떨어졌다. 만기가 6개월 남은 은행채 금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주택담보대출의 90% 이상이 CD 금리나 단기 은행채 금리에 연동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대출자들이 이달부터 저금리 시대의 혜택을 조금씩 볼 수 있는 셈이다.

반대로 예금자들은 저금리 시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은행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예금금리를 떨어뜨리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은행들이 눈치를 보며 예금금리 인하를 미루다 한은의 도움으로 CD 금리가 급락한 지난달 말부터 앞다투어 예금금리를 내리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아직까지 연 8%대 예금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어 고금리 예금에 가입할 수 있는 기회는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CD 금리와 단기 은행채 금리가 당분간 급락하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한은이 극약처방을 계속 내리지 않는 한 단기간 내 시중에 CD와 은행채를 살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은행 유동성 비율 기준이 '만기 3개월 이내 자산·부채'에서 '만기 1개월 이내'로 완화되면서 CD나 은행채 공급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승훈 연구원은 "보통 CD 금리는 한은의 기준금리보다 0.3%포인트에서 최대 0.8%포인트 높은 선에서 형성되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CD 금리가 높은 편이지만 수급요인 때문에 단기간 내 CD 금리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