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포럼 2008 D-7‥(7) 인재가 미래다] 日 제조업 경쟁력의 비밀...공상만화 속 장면이 리얼 버라이어티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차체는 철판이 아닌 대나무,연료는 태양광 전기,외장엔 벚꽃 디자인이 그려진 자동차.'
만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전기자동차가 일본 교토에서 개발되고 있다. 일명 '교토카(Kyoto Car)'.환경친화적 첨단기술과 문화가 접목되는 자동차다. 철저히 환경친화형 자동차를 지향하는 교토카는 차체에 철판을 사용하지 않는다. 연료도 태양광을 이용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억제를 위한 국제 협약인 '교토의정서'가 맺어졌던 도시로서 환경 친화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교토카엔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토의 전통 문화도 반영된다. 자동차 차체엔 밋밋한 단색 외장 대신 꽃무늬 등 일본의 전통 문양이 디자인될 예정이다. 첨단 환경자동차에 문화를 담겠다는 포부다.
2010년 개발을 목표로 한 이 교토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일본의 명문 국립대인 교토대의 벤처비즈니스랩(VBL) 마쓰시게 카즈미 부학장.쟁쟁한 자동차 기업들을 놔두고 대학 교수가 차세대 전기차를 개발한다니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마쓰시게 부학장에겐 든든한 지원그룹이 있다.
바로 교토지역의 혁신적인 벤처기업들이다. 마쓰시게 부학장은 벤처기업 8곳과 교토카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철판을 쓰지 않고 대나무 소재와 탄소섬유를 사용할 차체 개발엔 이 지역 최고의 나노기술 벤처기업이 참여했다. 전기자동차의 핵심인 태양광 전지와 연료전지 등도 지역 벤처기업이 직접 개발하고 있다. 교세라(정보통신기기) 옴론(전자부품) 덴소(자동차 부품) 등 일본 최고 부품기업들의 고향인 교토의 기술력이 교토카에 집약되는 셈이다. 교토시도 이 프로젝트를 적극 후원하면서 교토카 개발사업은 교토의 대표적인 '산ㆍ학ㆍ관 연계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산ㆍ학협동이 잘 되는 나라 중 하나다. 대학 및 연구소의 탄탄한 기초 과학과 기업의 뛰어난 응용기술이 접목돼 혁신적인 제품을 탄생시키는 나라가 일본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일본 제조업 경쟁력의 비결이기도 하다.
일본의 기초 과학 수준은 노벨상이 말해준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3명은 모두 일본인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3명 중 1명도 일본인이다. 일본은 지금까지 물리학 7명, 화학 5명,의학 1명 등 13명의 과학분야 노벨상을 배출했다. 2000년 이후로만 화학상 수상자가 4명째다.
더 중요한 건 일본의 과학은 '연구실'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대학의 기술은 도요타자동차 소니 파나소닉 등 세계적 기업들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낸다. 그 연결고리가 산ㆍ학 협동이다. 일본 정부는 이른바 '프리존(free zone)'이란 제도를 통해 산ㆍ학ㆍ연 연대의 활성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프리존은 말 그대로 'R&D(연구개발)의 자유지대'를 .뜻한다. 대학의 우수한 인력들과 국가연구기관,기업들이 공동 연구를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규제를 풀어줘 창조적 기술과 제품을 만들어 내도록 한다는 취지다.
일본의 산ㆍ학ㆍ연 연계엔 최고 국립대인 도쿄대가 앞장서고 있다. 도쿄대의 산ㆍ학 연대협의회엔 무려 540여개 기업이 가입해 있다. 도쿄대의 최근 대표적 산ㆍ학 연계 사업은 자동차용 탄소섬유 소재 개발이다. 일본 정부는 자동차 중량을 최대 40%까지 줄일 수 있는 탄소섬유 소재 개발 목표를 세우고,도레이 닛산자동차 등과 도쿄대학을 묶어줬다. 전략적 기술 개발에 대학과 기업을 짝짓기해준 것.이들은 2010년 중반까지 양산기술을 확립해 차체 중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강재 대부분을 신소재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들이 산ㆍ학 협력으로 우주선 부품까지 개발 생산한 경우도 있다. 히가시오사카에 있는 아오키라는 회사는 항공기와 우주선 부품을 만드는 조그만 중소기업이다. 직원은 고작 35명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회사는 산ㆍ학 협력을 통해 첨단 기술기업으로 도약한 일본 중소기업의 상징으로 꼽힌다. 아오키는 2002년 히가시오사카 지역의 중소기업과 대학교수들을 모아 '우주 관련 개발연구회'를 설립했다. 연구회는 그해 도쿄대와 함께 초소형 인공위성(CUBESAT)의 로켓 이탈기를 공동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회는 최근 우주개발 협동조합으로 확대돼 우주선 핵심 부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마쓰시게 교토대 부학장은 "대학은 기업이 부족한 기초 과학을 갖고 있지만 상업화를 위한 응용 기술은 기업을 앞설 수 없다"며 "상호 보완을 통해 기초 과학과 응용 기술을 합치면 창조적인 신기술과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창조적 인재는 대학에도 있다. 기업에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전지전능할 수는 없다. '2%부족한 무엇인가'가 있게 마련이다. 이 부족함을 메워주는 게 일본의 산ㆍ학협동이다. 이렇게 보면 창조적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대학과 기업의 역할이지만,이들이 창조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대학과 기업의 중요한 의무다. 국경과 업무 간 영역이 무너지고 있는 통합의 시대엔 더욱 그렇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