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의 '국정감사 수난'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증인으로 소환된 기업인들이 국감장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3시간을 대기하는 수모를 겪었다.

윤여철 현대차 울산공장 사장,유기준 GM대우 부사장,윤정호 르노삼성차 부사장,조남홍 기아차 사장 등 자동차 4사와 나완배 GS칼텍스 사장,김준호 SK에너지 CIC 사장,서영태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등 정유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은 환율이 45원이나 급등한 이날 하루를 고스란히 공쳐야 했다. 이철우 롯데쇼핑 대표와 민형동 현대백화점 대표,석강 신세계백화점 대표 등 백화점 CEO들과 강정석 동아오츠카 사장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당초 정무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국감 증인으로 이들 CEO를 채택해 출석을 요구한 시간은 오후 2시.하지만 회의는 점심시간을 이유로 3시로 연기됐으며 이마저도 국무총리실에 대한 국감이 덜 끝났다는 이유로 2시간 이상 늦춰졌다. 그동안 CEO들은 국감장 옆에 마련된 증인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국감장 주변을 배회해야만 했다.

지방 현장에 나가 있던 CEO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는 A사 관계자는 "공항 대기시간까지 3시간이 걸려 국감에 나왔더니 감사가 연기됐다고 해 다시 1시간을 차 안에서 기다렸다"면서 "증인 대기실에 나와 있으니 업무도 볼 수 없고 답답할 따름"이라고 하소연했다. B백화점 대표는 답답한 마음에 국감장이 있는 국회 본청 6층 복도를 서성거렸다.

그는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요새 CEO들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말 시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CEO들과 함께 국회에 나온 각 사 임원들의 입에서는 불만이 쏟아졌다. C자동차 임원은 "오늘같이 환율이 폭등하면 수출 기업들은 비상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환헤지와 원자재 수급 문제부터 최고경영자가 판단해줘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며 한숨을 쉬었다. D정유사 임원은 "정유사 담합은 공정거래위에서 결론 난 문제인데 궁금하면 그쪽 심사과정을 확인하면 되는 거 아니냐"면서 "국민이 뽑은 국회에서 행정부와 공공기관을 견제하라고 하는 게 국감 아닌가. 그런데 왜 주인인 국민을 부르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고환율과 주가 폭락으로 고통 받는 기업인들의 주름살이 늘었던 하루였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