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주 모이시는 것 아닙니까?" "글쎄요. 때가 때인지라…."

22일 오전 7시30분 서울 명동 은행회관.굳은 표정의 시중 은행장들이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을 피하며 14층 회의실로 속속 모여들었다. 20일 은행연합회 정기이사회 모임 후 이틀 만이다. 23일에는 금융노조와의 임단협을 위해 다시 이곳을 찾아야 하고,24일에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도 나와야 한다.

유지창 은행연합회장이 말문을 열었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자주 모이게 됐다. 결례를 무릅쓰고 갑작스레 소집하게 됐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어 "은행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시각이 곱지 않다. 오늘 모임이 늦은 감이 있어 보여 아쉬움이 있다"고 말을 이었다.

곧이어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는 국책 은행장들이 분위기를 잡았다. "국정 감사에서 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 많다. 상황이 좋지 않다"는 정치권의 기류를 전했고 곧 이어 시중은행장들의 발언이 뒤를 이었다.

한 지방은행장은 배포된 결의문 초안에 대해 "문구가 약하다. 화끈하게 하자"고 말했고,또 다른 시중은행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반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나왔다. "우리도 잘못했지만 외부의 비판적 시각이 지나친 측면도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경제 위기를 마치 은행들이 초래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구 수정을 놓고 의견이 오가면서 이날 회동은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20분이 지나서야 마무리됐다. 초안에 들어있던 '은행의 책무가 공익수호에 있다'는 부분은 '막중하다'로 바뀌었고 '반성'이라는 단어도 추가됐다. 하지만 '과도한 은행 간 경쟁을 자제하고' 등 반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들어가지 않았다. 회의를 마친 뒤에도 은행장들은 결의문 발표장에는 한 명도 등장하지 않은 채 은행회관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사진기자들 틈에서 "어차피 맞을 매를 책임지고 맞겠다는 행장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