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은행 지급보증 및 유동성 지원과 관련, 시중은행장들이 어제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결의문을 발표했다. 외환위기 때에 이어 또 다시 정부 지원에 기대게 된 것에 대해 깊은 반성과 책임감을 느끼며 은행장을 포함, 임원들의 연봉을 삭감하고 직원 임금동결을 유도하겠다는 게 골자다. 중소기업과 가계 고객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원인이 무엇이든 은행 뒤치다꺼리에 국민의 혈세가 들어가게 된 만큼 은행권이 이에 상응하는 자구(自救)노력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사실 그동안 은행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왜 갑자기 결의문이 나오게 됐는지 알 수 있다. 시중은행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 무려 45조원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았고 그 덕에 정상화됐다. 은행들은 이후 상대적으로 손쉬운 펀드판매나 부동산담보대출 등을 통해 수년간 1조원 이상의 이익을 내는 호황을 누리면서도 중소기업과 서민에게는 여전히 높은 문턱이었다. 게다가 일반 제조업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임금수준 등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까지 은행의 자구노력을 촉구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은행들의 자구노력은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며 앞으로 이의 철저한 이행이 담보돼야 한다. 특히 어제 결의문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는 만큼 은행권은 임금삭감과 중소기업 및 개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과 금리인하 등 분야에서 실효성 있는 추가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물론 금융위기가 대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은행은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10여년 전 큰 위기를 자초했던 은행들이 다시 방만(放漫)한 경영으로 국민들에게 손을 벌리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은행권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민의 신뢰 받는 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울러 중소기업 지원 등에서도 다른 금융회사의 모범이 되는, 솔선수범하는 은행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금융노조 역시 고통분담 차원에서 임금동결을 수용하고,앞으로도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는 자제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