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인재를 기껏 뽑아 놨는데 금새 회사를 옮겨 버리면 허탈하기 짝이 없다. 인재육성을 위해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갖췄다고해도 인재를 잡아두지 못하면 만사 도루묵이 되고 만다. 따라서 인재 채용이나 인재개발 못지않게 '인재유지'도 기업들에겐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 반도체업체인 인텔의 '휴가은행제(Vacation Bank Program)'는 인재 유지 방안으로 상당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제도는 근무기간 7년마다 약 60일에서 90일까지의 장기유급휴가를 주는 제도다. 휴식을 통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자는 의도에서 도입됐다. 휴가를 떠난 직원의 업무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다른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향상되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인텔 직원들은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개인휴가관리시스템(PLTS)'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한다. 이를 통해 휴가를 신청하거나 승인받는다. 휴가 사용실적도 체크할 수 있다. 직원들은 매년 자신이 부여받은 연차휴가 가운데 최대 6일의 휴가를 휴가은행에 적립할 수 있다. 7년간의 적립기간이 지나면 이를 한꺼번에 신청해 장기 휴가 및 자아발전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

휴가은행에는 직원 1인당 7년간 최대 40일까지 적립할 수 있다. 이렇게 적립된 40일에 해당 년도의 연차까지 더해 한꺼번에 사용하면 약 60일,연휴와 공휴일을 포함하면 최대 90일까지 장기유급휴가가 가능하다. 대신 직원들은 장기휴가 사용계획을 상급자에게 6개월 전에 미리 알려야 한다. 상급자와 팀원들이 자신의 휴가기간에 대한 지원 계획을 의논하고 자신의 업무 공백을 메워줄 사람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다.

인텔의 '임시교환근무제(TCAP)'는 휴가은행제와 맞물려 있다. 이는 내부 공고를 통해 장기 휴가를 떠나는 직원의 휴가기간(약 60일∼90일) 동안 대신 일할 수 있는 지원자를 확보하는 제도다. 예컨데 인텔홍콩에 근무하는 C사원은 매달 사내에 공지되는 TCAP (임시교환근무제) 리스트를 본 후 2009년 1월부터 인텔코리아의 A직원이 약 72일간 휴가를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매니저와 A직원의 매니저에게 임시교환근무를 해보겠다는 의사를 밝힌 C사원은 다른 2명의 지원자들과의 인터뷰 경쟁을 거쳐 최종 합격한다. C사원은 A직원과의 업무 인수인계를 포함해 모두 85일의 일정으로 인텔코리아에서 근무하게 된다.

짧은 기간이라도 다른 지역,다른 직군에서 업무를 수행하다보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올들어 지난달까지 인텔 아시아지역에서만 약 80여명의 직원들이 임시교환근무제를 통해 자신의 업무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았거나 쌓고 있는 중이다. 이런 제도를 시행한 결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져 이직률이 상당히 낮아졌다는게 인텔의 설명이다. 꼭 보수를 많이 주지 않아도 창조적 인재를 붙잡을 수 있는 방안은 도처에 널려 있는 셈이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