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중·장기적으로 보면

투자원금 회복기회 분명히 있어

길게 보고 호흡을 조절해야

2006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단독주택을 20억원에 매각한 A씨(63).그는 이 자금을 한 시중은행 강남 프라이빗 뱅킹(PB)센터를 통해 당시 한창 열풍이 불던 펀드에 투자했다. 한때 연 수익률이 최고 30%에 달하기도 했던 A씨의 펀드는 요즘 수직낙하해 반토막나 있다. 그는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노후 대비용'으로 묻어둔 이 자금의 절반가량이 허공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A씨는 지금이라도 손절매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강남부자들도 패닉 상태에 빠졌다. 부자들의 경우 투자 원금이 일반인들에 비해 큰 만큼 손실의 절대액도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크다. 때문에 지난 수년간 투자에서 승승장구하던 부자들 역시 최근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밤잠을 못이룰 정도로 불안해하는 분위기다.

800명가량의 고객을 관리 중인 한 시중은행 강남 PB센터.이 센터 고객의 상당수는 30억∼40억원대의 금융자산을 굴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 고객의 거의 대부분이 투자 원금 대비 40∼50% 정도의 평가손실을 보고 있다는 게 이곳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2005년 하반기에 노후 대비용으로 25억원의 자금을 펀드에 투자한 한 고객은 현재 평가금액이 13억7000여만원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곳에서 근무 중인 10명의 PB팀장은 요즘 하루 일과를 고객들의 하소연을 듣는 것에서 시작해 하소연 들어주는 것으로 끝난다. 고객 가운데 몇몇은 하소연이 아니라 욕설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 센터의 한 PB팀장은 "그나마 우리 센터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다른 센터의 경우 흥분한 고객으로부터 멱살을 잡히는 등 최근 1∼2개월 새 폭력을 행사당한 PB팀장들도 많다"고 험악한 분위기를 전했다.

폭락장 속에서 부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펀드를 환매해 남아 있는 자금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부자고객의 염려에 대해 일선 PB팀장들은 "빚을 내서 투자한 경우가 아니라면,앞으로 3∼5년 정도 중·장기적으로 보고 계속 들고 가는 게 낫다"고 조언하고 있다.

중·장기 보유론을 주장하는 상당수 PB팀장들은 한국이 이미 겪었던 과거의 예를 들며 부자고객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최악의 침체기였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시절에도 1997년 이후 3년6개월가량이 지나고 전고점을 회복했다는 것.2000년대 초반의 IT버블 붕괴 때도 2년 만에 주가가 회복됐다.

문제는 지금의 투자환경이 그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는 데 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하더라도 당시에는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이 국내 주식시장에 한정돼 있었지만,지금은 중국 러시아 인도 등 전 세계 이머징마켓으로 넓어졌다.

국내 증시의 경우 반등 시점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해외 증시의 경우 언제 다시 정상화될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게 부자들이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다.

최악의 시기였던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전 세계적으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지역이 아시아 일부 국가에 한정돼 있었지만,이번에는 전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도 다르다. 전문가들 가운데 이번 위기를 1930년대 대공황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강우신 기업은행 분당파크뷰지점 PB팀장은 "굴리는 돈의 '덩치'가 크기 때문에 부자들은 돈을 벌 때도 그렇지만,돈을 잃을 때도 그 규모가 크다. 이런 이유로 지금 상황은 부자들이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3∼5년 중·장기적으로 보면,투자 원금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길게 보고 호흡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