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와 결별한 포스코에 대우조선해양 단독 응찰 자격을 줄 것인가를 놓고 고심해 온 산업은행이 '구제 불가'로 결론을 냈다. 자칫 대우조선해양 매각작업 자체가 어그러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포스코를 끌어들여 최대한 흥행의 판을 키우는 것이 '공적자금 회수율 극대화'라는 산은의 기본 임무에 충실한 해답이지만,한화와 현대중공업이 소송으로 맞설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는 판단에서였다.
'최선의 길'보다 '안전한 길'을 선택한 셈이다. 산은의 결정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판도는 한화와 현대중공업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장고 끝에 내린 고육책
GS그룹이 포스코와의 컨소시엄을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지난 13일.곧바로 포스코의 자격시비가 불거졌지만 산은은 당장 유권해석을 내리지 않았다. 산은의 결정이 하루 이틀 미뤄지면서 한때 '포스코 부활설'이 힘을 얻기도 했다. 산은이 포스코를 껴안기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결국 산은은 포스코 카드를 버리는 쪽을 택했다. 포스코의 진입을 가로막은 결정적 요인은 입찰제안서의 부적격성.공동입찰 형식으로 제출된 제안서를 단독입찰로 바꾸는 것은 제안서 내용의 본질적인 변동을 수반한다는 판단이다. 포스코에만 제안서를 두 번 내는 기회를 주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약점을 안고 산은이 포스코를 부활시키기엔 떠안아야 할 부담이 너무 컸다. 한화와 현대중공업이 입찰절차의 공정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법정에서 승소할 확률이 크지 않고,이긴다 하더라도 매각과정이 크게 지연돼 하이닉스 등 대기 중인 매물의 인수작업이 줄줄이 차질을 빚게 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산은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한화·현대중공업 2파전
GS가 포스코의 발목을 잡고 같이 넘어지는 바람에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한화와 현대중공업 두 곳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한화의 우세를 조심스레 점치는 분위기다. 전망의 첫 번째 근거는 인수가격.최고경영진의 의지로 볼 때 한화가 현대중공업에 비해 공격적인 가격을 제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에 제출한 본입찰 서류에도 한화가 현대중공업보다 더 높은 가격을 써냈다는 루머가 흘러나온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있다는 것도 한화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우는 요인이다. 한화의 최대 약점으로 제기되던 자금 동원력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포스코와 GS로 몰려들었던 재무적·전략적 투자자 중 상당수가 한화에 노크를 할 것이라는 얘기다. 국민연금마저 움직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한화가 훨씬 유리한 국면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엇갈리는 명암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산은의 발표를 기다리던 포스코는 '탈락 소식'에 크게 낙담하는 분위기였다. 공식적으로는 "산은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담담한 입장을 밝혔지만 인수 실무팀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포스코 관계자는 "제대로 겨뤄보지도 못하고 물러나게 돼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과 한화는 매각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내린 산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일형 한화 부사장은 "산업은행이 중대하고 이례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철저한 검토를 벌여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포스코도 훌륭한 인수 후보 중 한 곳이지만 국내 경쟁 입찰에서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전까지 최선을 다해 신중한 자세로 임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매각 과정에서 절차의 중요성을 인정해 고심 끝에 내린 산업은행의 판단을 환영한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