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나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투자은행이 줄줄이 무너진 월가에 요즘 뜨는 자산운용사가 있다. 바로 '채권 투자왕'으로 유명한 빌 그로스가 있는 핌코다. 핌코는 7000억달러에 달하는 미 구제금융펀드를 운용할 1순위 후보로 꼽힌다. 지난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결정한 기업어음(CP) 매입도 핌코가 대행하고 있다. 핌코의 투자를 총지휘하는 그로스의 성공 비결이 바로 물구나무서기 요가와 블랙잭이라면 믿어질까. 그는 최근 금융위기 속에서 양대 국책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에 투자해 하루 만에 17억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정부가 두 국책 모기지 업체를 부도 처리하지 않고 결국 인수할 것이란 판단이 적중한 데 따른 것이다.

그로스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요가의 물구나무서기 자세에서 투자 타이밍을 잡고,블랙잭에서 베팅 기술을 익혔다"고 털어놨다.

그는 며칠 전 갖고 있던 미 국채를 팔아 거액을 챙겼다. 미 정부가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 재원을 마련하려면 채권을 대량 발행해야 할 것이고,그럴 경우 채권값이 급락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요가 매트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그로스는 "물구나무서기 명상과 운동은 엔돌핀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최고의 아이디어를 샘솟게 한다"고 말했다.

펀드평가회사인 모닝스타의 로렌스 존스 뮤추얼펀드 애널리스트는 "이거다 싶으면 크게 베팅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그로스의 베팅 기술을 분석했다. 그런 동물적 베팅 스타일을 체화한 것은 블랙잭 게임을 마스터한 덕분이다. 그로스는 대학시절 교통사고로 차 앞유리를 뚫고 나가 떨어진 뒤 두개골 일부가 날아가 재이식하면서 장기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때 수학교수인 에드워드 도르프가 쓴 '딜러를 이겨라'라는 블랙잭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1966년 대학 졸업 후에는 배운 이론이 통하는지 보려고 200달러를 손에 쥐고 카지노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로 향했다. 남들이 여자친구 사귀고 영화 보러 갈 때 3개월 동안 뷔페식당에서 밥만 먹고 하루에 16시간을 블랙잭에 몰입한 결과 그는 원금을 50배(1만달러)로 불렸다.

그로스는 "블랙잭에서 '왕 카드'가 많이 나와 딜러가 이길 확률이 높으면 베팅을 조금 하고 내가 확률이 높으면 두 배,세 배,네 배로 베팅했다"며 "당시 터득한 수학적 사고와 리스크 관리를 채권 투자에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UCLA 경영대학원(MBA) 학비도 블랙잭으로 조달했지만 지금은 게임을 즐길 시간이 없는 데다 흥미까지 잃었다.

'채권왕,빌 그로스의 비밀'의 저자이자 뮤추얼펀드 전문가인 티머시 미들턴은 "그로스는 내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가장 머리가 좋은 인물로 컴퓨터와 같은 두뇌를 가졌다"고 소개했다.

천재성 두뇌에다 물구나무서기와 블랙잭 장기로 무장한 그로스는 1987년 조성한 채권투자펀드인 토털 리턴 펀드(현재 총자산 1320억달러)에서 1995년 19.7%,2002년 10.2%,지난해 9.1% 등 경이로운 수익률을 달성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