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받은 아티사리 前 핀란드대통령은…코소보에 희망 심은 '평화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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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71)이 선정됐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2005년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 반군 간 평화회담을 중재하고 지난해까지 유엔 코소보 특사로 활동하며 각종 국제분쟁 해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아티사리 전 대통령이 3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등지에서 다양한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노력으로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졌으며 국가들 간 우애도 강화됐다"며 "이는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수상 직후 노르웨이 NRK TV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고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수상이 자신이 이끄는 평화단체의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노력한 나미비아 독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나 코소보와 아체에서의 평화 노력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소개했다.
핀란드인으로 처음 노벨상을 수상한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북아일랜드,중앙아시아와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 등 전 세계에 걸쳐 분쟁해결사로 활약해왔다. 지난해에는 이라크 민족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수상으로 순금으로 만든 메달과 함께 1000만 스웨덴크로나(약 18억20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 시상식은 오는 12월10일 열린다.
1937년생인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으로,젊은 시절에는 개발도상국 원조에 관심을 보여 파키스탄 등지에서 체류했다. 1973~1977년에는 탄자니아 주재 대사를 지냈고,대사 재직 시절 나미비아의 지도자들과 접촉하며 독립을 지원했다. 1977년부터는 유엔에서 일하면서 나미비아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고,이후 1990년 3월 나미비아 독립 당시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94년 핀란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재임 후에도 외교 분야에서 업적을 남겨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헬싱키에서 만나는 데 다리 역할도 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에는 유럽연합(EU) 대표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중재해 전쟁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핀란드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0년에는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곧바로 물러났고,이후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의 분쟁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부터는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파 간 평화 중재에 힘쓰고 있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분쟁 중재는 "일종의 예술"이라며 분쟁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마르티 아티사리 약력
△1937년 핀란드 출생 △1973~1977년 주탄자니아 핀란드 대사 △1990년 나미비아 독립 지원 △1994~2000년 핀란드 대통령 △2001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중재 △2002년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 분쟁 해결 △2005년 유엔 코소보 특사 활동,아체 반군 간 평화회담 중재 △2007년 이라크의 수니파-시아파 갈등 조정 △2008년 노벨평화상 수상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 "아티사리 전 대통령이 30여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등지에서 다양한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노력으로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워졌으며 국가들 간 우애도 강화됐다"며 "이는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정신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수상 직후 노르웨이 NRK TV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받게 돼 매우 기쁘고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수상이 자신이 이끄는 평화단체의 자금 조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노력한 나미비아 독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그는 그러나 코소보와 아체에서의 평화 노력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소개했다.
핀란드인으로 처음 노벨상을 수상한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북아일랜드,중앙아시아와 이른바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 등 전 세계에 걸쳐 분쟁해결사로 활약해왔다. 지난해에는 이라크 민족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수상으로 순금으로 만든 메달과 함께 1000만 스웨덴크로나(약 18억20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 시상식은 오는 12월10일 열린다.
1937년생인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외교관 출신으로,젊은 시절에는 개발도상국 원조에 관심을 보여 파키스탄 등지에서 체류했다. 1973~1977년에는 탄자니아 주재 대사를 지냈고,대사 재직 시절 나미비아의 지도자들과 접촉하며 독립을 지원했다. 1977년부터는 유엔에서 일하면서 나미비아 문제 해결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고,이후 1990년 3월 나미비아 독립 당시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94년 핀란드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재임 후에도 외교 분야에서 업적을 남겨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헬싱키에서 만나는 데 다리 역할도 했다.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에는 유럽연합(EU) 대표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당시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이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중재해 전쟁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핀란드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0년에는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곧바로 물러났고,이후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의 분쟁과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부터는 이라크의 수니파와 시아파 간 평화 중재에 힘쓰고 있다. 아티사리 전 대통령은 분쟁 중재는 "일종의 예술"이라며 분쟁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마르티 아티사리 약력
△1937년 핀란드 출생 △1973~1977년 주탄자니아 핀란드 대사 △1990년 나미비아 독립 지원 △1994~2000년 핀란드 대통령 △2001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중재 △2002년 아프리카 동북부 지역 분쟁 해결 △2005년 유엔 코소보 특사 활동,아체 반군 간 평화회담 중재 △2007년 이라크의 수니파-시아파 갈등 조정 △2008년 노벨평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