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일본의 '월街 쇼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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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도쿄에 부임하자마자 이런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짜증나는 일본 은행'. 일본 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러 갔다가 은행원들의 구태의연한 업무 처리로 30분 이상 기다렸던 경험을 토대삼아 썼던 기사다. 기자는 당시 '구조조정을 통해 업무 프로세스를 혁신한 한국에 비해 일본 금융산업은 한참 낙후됐다'고 감히 평가했다. '제조업은 몰라도 금융만은 한국이 일본보다 앞섰다'고도 썼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고쳐 먹었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 와중에 미쓰비시UFJ은행 노무라증권 등이 민첩하게 모건스탠리 리먼브러더스 등을 헐값에 인수하는 걸 보고 나서다. 미쓰비시UFJ는 궁지에 몰린 모건스탠리에 90억달러를 투자해 최대 주주(지분율 21%)가 됐다. 노무라는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중동과 아시아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그것도 엄청난 헐값에 샀다. 노무라가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중동부문을 인수하면서 지불한 돈은 2달러였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에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인력 2500여명을 스카우트한 셈이다. 미쓰비시UFJ의 모건스탠리 지분 인수가격(주당 25.25달러)도 1년 전에 비하면 60%나 싼 것이다.
일본 금융사들은 '월가 쇼핑'으로 단번에 국제금융 무대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됐다. 그동안 미국계 금융사에 밀렸던 IB부문도 보강하게 됐다. 구로야나기 노부오 미쓰비시UFJ 사장은 모건스탠리 지분 인수를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말했을 정도다. 일본이 월가의 거물 금융사들을 접수했다는 결과만을 놓고 감탄하는 건 아니다. 일본 금융사들이 그들을 인수할 수 있었던 잠재력이 더 놀라운 것이다. 거기엔 크게 세 가지 힘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탄탄한 자금력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을 거쳤다지만,벌어놓은 돈이 많은 나라다. 개인들의 금융자산만 1500조엔(약 15조달러)으로 미국(44조달러)의 3분의 1에 달한다. 메가뱅크인 미쓰비시UFJ의 총자산은 193조엔(약 2240조원)으로 한국 최대 은행그룹인 우리금융지주(276조원)의 8배를 넘는다.
둘째,신속한 의사결정이다. 미쓰비시UFJ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불과 사흘 만에 결정했다. 모건스탠리의 사정이 워낙 급박하기도 했지만,미쓰비시UFJ 경영진의 전광석화 같은 판단은 '일본 회사답지 않다'는 평가와 함께 국제금융계의 화제가 됐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경영 능력이다. 일각에선 노무라가 리먼브러더스의 해외 부문 인력을 흡수하더라도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건 노무라를 한참 몰라서 하는 소리다. 노무라는 이미 유럽법인에서 1500명의 다국적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 능력을 충분히 갖춘 회사란 얘기다.
한국 금융도 미국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입질을 한 것만으로 큰 코를 다친 뒤 모두 바짝 엎드려 있다. 글로벌 IB 육성,국제금융센터 등 구호만 요란했던 한국은 일본의 활약을 부러워만 하는 형편이다. 새삼 평범한 진리 한 마디가 생각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는 건 준비된 자만 가능하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을 고쳐 먹었다. 최근 미국의 금융위기 와중에 미쓰비시UFJ은행 노무라증권 등이 민첩하게 모건스탠리 리먼브러더스 등을 헐값에 인수하는 걸 보고 나서다. 미쓰비시UFJ는 궁지에 몰린 모건스탠리에 90억달러를 투자해 최대 주주(지분율 21%)가 됐다. 노무라는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중동과 아시아 사업부문을 인수했다. 그것도 엄청난 헐값에 샀다. 노무라가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중동부문을 인수하면서 지불한 돈은 2달러였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 값에 세계적인 투자은행(IB)인력 2500여명을 스카우트한 셈이다. 미쓰비시UFJ의 모건스탠리 지분 인수가격(주당 25.25달러)도 1년 전에 비하면 60%나 싼 것이다.
일본 금융사들은 '월가 쇼핑'으로 단번에 국제금융 무대의 주역으로 부상하게 됐다. 그동안 미국계 금융사에 밀렸던 IB부문도 보강하게 됐다. 구로야나기 노부오 미쓰비시UFJ 사장은 모건스탠리 지분 인수를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말했을 정도다. 일본이 월가의 거물 금융사들을 접수했다는 결과만을 놓고 감탄하는 건 아니다. 일본 금융사들이 그들을 인수할 수 있었던 잠재력이 더 놀라운 것이다. 거기엔 크게 세 가지 힘이 작용했다고 본다.
첫째,탄탄한 자금력이다. 일본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불황을 거쳤다지만,벌어놓은 돈이 많은 나라다. 개인들의 금융자산만 1500조엔(약 15조달러)으로 미국(44조달러)의 3분의 1에 달한다. 메가뱅크인 미쓰비시UFJ의 총자산은 193조엔(약 2240조원)으로 한국 최대 은행그룹인 우리금융지주(276조원)의 8배를 넘는다.
둘째,신속한 의사결정이다. 미쓰비시UFJ는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불과 사흘 만에 결정했다. 모건스탠리의 사정이 워낙 급박하기도 했지만,미쓰비시UFJ 경영진의 전광석화 같은 판단은 '일본 회사답지 않다'는 평가와 함께 국제금융계의 화제가 됐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경영 능력이다. 일각에선 노무라가 리먼브러더스의 해외 부문 인력을 흡수하더라도 제대로 관리를 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건 노무라를 한참 몰라서 하는 소리다. 노무라는 이미 유럽법인에서 1500명의 다국적 인력을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 능력을 충분히 갖춘 회사란 얘기다.
한국 금융도 미국 금융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 인수에 입질을 한 것만으로 큰 코를 다친 뒤 모두 바짝 엎드려 있다. 글로벌 IB 육성,국제금융센터 등 구호만 요란했던 한국은 일본의 활약을 부러워만 하는 형편이다. 새삼 평범한 진리 한 마디가 생각난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러나 그 기회를 잡는 건 준비된 자만 가능하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