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그리스 이어 독일-오스트리아-네덜란드 잇단 확대
英야당 "獨 뒤따르라" 압박..오늘 EU 재무회담 소집
이탈리아 '공동 구제기금' 제안

미국이 어렵사리 일괄적인 금융 구제안을 성사시킨 것과는 달리 유럽은 지난 주말의 긴급 '미니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각자 살기'로 윤곽이 잡힌 상황에서 신용 경색발 뱅크런(집단 예금인출)을 막기위한 예금보호 확대가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5일(이하 현지시각) 언론 브리핑에서 "모든 저축예금 보유자에게 걱정말라고 말하겠다"면서 "연방 정부가 보증한다"고 밝혔다.

독일 재무부 대변인도 이날 저축예금 무제한 지급보증 조치가 즉각 발효된다고 말했다.

독일의 저축예금 무제한 지급 보장은 독일 2위 모기지 금융기관인 히포 리얼 에스테이트(HRE)에 대해 독일 사상 최대 규모인 500억유로(미화 약 680억달러 가량)의 구제 금융을 제공키로 합의됐다고 발표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독일은 당초 아일랜드가 자국 은행 계좌에 대해 향후 2년간 무제한으로 지급을 보증하겠다고 밝히자 비판적인 입장이었으나 미국발 금융 위기가 워낙 심각해지자 불안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역시 무제한 보장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현행 독일법의 개인 예금에 대한 지급보장 한도는 2만유로까지다.

독일은 연방예금보호기금으로 이를 보장하고 있으나 독일은행협회의 이 기금도 미국발 금융 위기 속에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일랜드에 이어 그리스도 앞서 개인 예금에 대한 무제한 지급 보장을 발표했다.

독일이 이처럼 무제한 보장 쪽으로 선회하자 영국에서 같은 조치를 취하라는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은 지난 3일 개인 예금보장 한도를 5만파운드(8만8천달러 가량)로 그간의 3만파운드에서 높이는 조치를 발표했다.

지급보증 상향 조정은 영국 예금의 98% 가량에 해당되는 것으로 설명됐다.

그러나 영국 3위 정당인 자유민주당은 5일 당수 성명을 내고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저축예금 무제한 보장 쪽으로 돌아선 것을 상기시키면서 "영국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성명은 아일랜드도 지난주 은행 예금을 2년간 한도없이 지급보증하는 조치를 취했다면서 "이런 움직임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영국 재무부은 독일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알리스테어 다링 영국 재무장관도 그간 영국 금융 시스템 보호를 위해 "뭐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다링 장관은 또 은행의 자본 구성을 재편하기 위해 수십억파운드를 투입, 은행 주식을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링 장관은 5일 BBC와 인터뷰에서 "평상시라면 하지 않을 매우 큰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브라이언 레니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아일랜드가 모두 400억유로를 투입해 자국 은행의 지급을 무제한 보증키로 한 것이 영국 예금에 미치는 타격을 검토할 것이라고 5일자 로이터 회견에서 밝혔다.

로이터는 아일랜드가 무제한 보장 조치를 발표한 후 영국에서 예금이 대거 인출돼 아일랜드 쪽으로 이동해왔다면서 이에 대해 영국이 '공정경쟁 위반'이라고 발끈함에 따라 아일랜드가 후속 조치를 검토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아일랜드 재무부는 역내 외국은행의 리테일 뱅킹도 무제한 지급 보장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네덜란드도 국내 모든 은행예금을 보장한다고 6일 밝혔다.

네덜란드에서는 지금까지 최고 30만크라운까지만 예금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은행들은 정부로부터 지급 보장을 받는 대가로 2년에 걸쳐 350억크라운(65억달러)에 이르는 유동성 기금 조성에 참여해야 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부실은행을 정부가 인수하는 대신 부실은행에 유동성 기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오스트리아도 저축예금 보장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빌헬름 몰테러 재무장관이 5일 국영 TV에 밝혔다.

그는 그러나 현재 개인당 2만유로까지인 지급보증 한도를 어느 수준까지 높일 것인지는 언급하지 않은채 "논의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 재무장관들이 6-7일 회동하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역내 예금보장 한도 상향조정에 대한 의견 조율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오스트리아는 8일 각의 후 예금보장 한도 확대에 대한 결정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는 6일 룩셈부르크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의에 '은행 공동 구제기금' 조성 방안을 다시 제안할 것이라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5일 밝혔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미국의 구제금융안과 같은 공동 구제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지난주말 유럽 4개국 정상회의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정상들의 입장이 지지로 선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ANSA 통신에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제안을 수용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에 동의한다고 말했으며, 프랑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관리들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을 부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의 한 관리는 "지난 4일 유럽 4개국 정상회의에서 발표한 성명에 바뀐 게 없다"면서 공동 구제기금 조성에 대한 제안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