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행복ㆍ혁신ㆍ기업도시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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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중앙대 교수.경제학>
정부가 국가자원을 나눠주는 정책을 쓰면 "내 밭에 더 많은 물을 대야 정의"라는 논리가 쏟아지게 마련이다. 행복도시 혁신도시 등의 논의가 이런 경우로,지역 이해관계자들은 이것이 국가이익을 키우는 정의로운 사업임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국익은 물론 지역도시의 진정한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무책임하게 벌어진 이 도시대책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행복도시의 경우,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語錄)이 문제의 근원을 밝혀준다. 8년 전 그는 "해양부 장관 취임 30일 만에 39차례 출장을 갔는데 3분의 2가 국회,정당,청와대 등과 관련됐다,해양부가 부산으로 옮긴다면 장관은 거의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따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행정중심도시 입법 때는 수도를 둘로 쪼개도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작년 기공식에서는 다시 "청와대와 정부,일부 부처의 공간적 분리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라며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행복도시는 원초적으로 사심(邪心)이 낀 도시로 태어난 것이 문제다. 원래 노 전 대통령은 행정부만 있는 도시가 언어도단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수도이전'이 위헌판정을 받자 '행정도시'만 짓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땅은 수도계획 때보다 오히려 더 넓혀 잡았다. 이제 행정부가 오고 땅도 남으니 모든 정부가 따라와야 정상(正常)이 된다는 논리가 따를 차례다. 실상 아직도 이렇게 주장하는 대학교수와 지역인사가 존재하니 답답한 일이다.
따라서 충청도는 여의도의 25배나 되는 행복도시를 채울 문제만 안게 됐다. 이것은 재앙이지 축복이 아니다. 재작년 건설교통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과천청사의 5000~6000명이 이주대상이 되는데 이의 81%는 서울 집을 안 팔고 60%는 본인만 가거나 가족 일부만 동행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 효과를 보자고 막중한 국정(國政)을 희생양으로 던져야 하겠는가. 기러기 가장 공무원들의 외로운 삶,피곤한 여행,정부에 대한 불평,능률하락과 좌절감을 생각해 보았는가. 민원인들이라고 신도시로 이주하겠는가.
공기업 지방이전이나 수도권 규제에서 떨어지는 이익을 얻자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공기업은 공익을 생산함이 본업이고,수도권은 우리 국력의 심장이다. 이들을 지역균형의 제물로 희생시킴은 마치 천리마(千里馬)를 식육으로 도축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중국의 한 도시(重慶)보다 조금 큰 나라가 무슨 수로 한꺼번에 16개나 되는 새 도시를 건설해서 경쟁력 있는 도시로 키우겠다는 것인지 그 국가만능정권의 무모함이 아연할 따름이다.
모든 적자생존의 과정에서 보듯이 10년,20년 뒤 이들 도시의 태반은 아마 도태할 것이다. 공기업,공공기관은 민영화돼 제 갈 데로 가거나 빈껍데기만 남고,수도권규제로 탈출하는 기업은 세계 어디건 기업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세계 각 도시와 치열하게 경쟁해서 자원,산업과 사람을 끌어들일 힘을 기른 도시에만 생존의 길이 열린다. 공직자들은 발로 뛰고 머리를 짜내어 값싸고 질 좋은 땅,인력과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 이런 '도시의 자질'은 지역지도층이 수도권규제나 행정부,공기업 같은 선물 챙기기에나 골몰하는 지자체에서 기대할 자산이 아니다.
행복도시,기업도시 등의 논의에 있어서 지역이해관계자들은 자신이 '공정한 재판관'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이런 편향된 논리는 도시의 경쟁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지금 지역리더십의 진정한 역할은 '새 도시의 운명'을 지역사회에 정확히 알려 닥쳐올 가혹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국가자원을 나눠주는 정책을 쓰면 "내 밭에 더 많은 물을 대야 정의"라는 논리가 쏟아지게 마련이다. 행복도시 혁신도시 등의 논의가 이런 경우로,지역 이해관계자들은 이것이 국가이익을 키우는 정의로운 사업임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국익은 물론 지역도시의 진정한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무책임하게 벌어진 이 도시대책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
행복도시의 경우,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록(語錄)이 문제의 근원을 밝혀준다. 8년 전 그는 "해양부 장관 취임 30일 만에 39차례 출장을 갔는데 3분의 2가 국회,정당,청와대 등과 관련됐다,해양부가 부산으로 옮긴다면 장관은 거의 서울에 사무소를 두고 따로 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행정중심도시 입법 때는 수도를 둘로 쪼개도 "아무 문제없다"고 말했다. 작년 기공식에서는 다시 "청와대와 정부,일부 부처의 공간적 분리는 매우 불합리한 결과"라며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두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행복도시는 원초적으로 사심(邪心)이 낀 도시로 태어난 것이 문제다. 원래 노 전 대통령은 행정부만 있는 도시가 언어도단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수도이전'이 위헌판정을 받자 '행정도시'만 짓겠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땅은 수도계획 때보다 오히려 더 넓혀 잡았다. 이제 행정부가 오고 땅도 남으니 모든 정부가 따라와야 정상(正常)이 된다는 논리가 따를 차례다. 실상 아직도 이렇게 주장하는 대학교수와 지역인사가 존재하니 답답한 일이다.
따라서 충청도는 여의도의 25배나 되는 행복도시를 채울 문제만 안게 됐다. 이것은 재앙이지 축복이 아니다. 재작년 건설교통부의 설문조사에 의하면,과천청사의 5000~6000명이 이주대상이 되는데 이의 81%는 서울 집을 안 팔고 60%는 본인만 가거나 가족 일부만 동행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 효과를 보자고 막중한 국정(國政)을 희생양으로 던져야 하겠는가. 기러기 가장 공무원들의 외로운 삶,피곤한 여행,정부에 대한 불평,능률하락과 좌절감을 생각해 보았는가. 민원인들이라고 신도시로 이주하겠는가.
공기업 지방이전이나 수도권 규제에서 떨어지는 이익을 얻자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공기업은 공익을 생산함이 본업이고,수도권은 우리 국력의 심장이다. 이들을 지역균형의 제물로 희생시킴은 마치 천리마(千里馬)를 식육으로 도축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대체 중국의 한 도시(重慶)보다 조금 큰 나라가 무슨 수로 한꺼번에 16개나 되는 새 도시를 건설해서 경쟁력 있는 도시로 키우겠다는 것인지 그 국가만능정권의 무모함이 아연할 따름이다.
모든 적자생존의 과정에서 보듯이 10년,20년 뒤 이들 도시의 태반은 아마 도태할 것이다. 공기업,공공기관은 민영화돼 제 갈 데로 가거나 빈껍데기만 남고,수도권규제로 탈출하는 기업은 세계 어디건 기업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떠날 것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세계 각 도시와 치열하게 경쟁해서 자원,산업과 사람을 끌어들일 힘을 기른 도시에만 생존의 길이 열린다. 공직자들은 발로 뛰고 머리를 짜내어 값싸고 질 좋은 땅,인력과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 이런 '도시의 자질'은 지역지도층이 수도권규제나 행정부,공기업 같은 선물 챙기기에나 골몰하는 지자체에서 기대할 자산이 아니다.
행복도시,기업도시 등의 논의에 있어서 지역이해관계자들은 자신이 '공정한 재판관'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한다. 이런 편향된 논리는 도시의 경쟁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지금 지역리더십의 진정한 역할은 '새 도시의 운명'을 지역사회에 정확히 알려 닥쳐올 가혹한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