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스페인 은행 산탄데르가 승자로 떠오르고 있다.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와코비아 등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하거나 인수당하는 가운데 산탄데르는 헐값에 나온 금융회사들을 골라 인수하면서 유로존 최대의 은행으로 떠올랐다.

이는 '소매금융' 사업에만 집중해온 덕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불거진 이번 위기에 손상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상반기에 전년 동기대비 22% 늘어난 47억유로(약 8조원)의 순이익을 거뒀고 인수합병(M&A) 등에 쓰려고 쌓아 놓은 자본만 680억달러에 달한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 인터넷판은 "유럽 변방의 지방은행에 불과했던 산탄데르가 전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전통적 대출 방식과 적극적인 M&A를 통해 세계 금융시장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다"고 3일 보도했다.

◆M&A에 집중

'산탄데르의 힘'은 최근 몇 개월 새 유럽 전역에서 위기에 빠진 금융회사들을 잇달아 먹어치우면서 입증됐다. 영국 정부가 지난달 29일 모기지업체인 브래드포드 앤드 빙글리(B&B)를 국유화하기로 하자 산탄데르는 재빨리 B&B의 소매금융 부문을 10억9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엔 22억4000만달러 규모인 영국 얼라이언스 앤드 레이세스터(A&L)은행 인수를 마무리했다.

이로써 산탄데르는 2004년 164억달러에 사들인 애비은행을 합쳐 영국에서 지점 1300여개,개인대출시장의 13%를 장악하게 됐다. 독일에선 도이체 포스트의 자회사인 포스트방크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앞서 미국의 상업은행 와코비아 인수 협상에 나서기도 했다.

◆소매금융 집중이 성공 비결

산탄데르가 전 세계 위기 속에 '독야청청'할 수 있는 원동력은 소매금융이라는 '한 우물'만 파는 전략에서 나온다. 소매금융에서의 특화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산탄데르는 지난 상반기에 전년 동기보다 22% 늘어난 47억유로의 이익을 냈다. 전체 이익 중 소매금융 부문의 비율이 77%에 달한다.

특히 다른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감수한 채 복잡한 파생상품을 사고 팔며 떼돈을 벌 때 예금 유치,대출 등에만 집중한 덕에 서브프라임의 부메랑을 피할 수 있었다. 세계 1위인 HSBC도 이번 금융위기 여파에 따른 손실액이 274억달러(27조5000억원)에 이르지만 산탄데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손실이 전혀 없다.

호세 마누엘 발레라 산탄데르 부행장은 주가가 폭락한 미국계 투자은행(IB)등을 M&A할 가능성이 없는지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소매금융에 집중하겠다"며 "IB,기업금융 등도 하겠지만 이런 사업은 언제나 부수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산탄데르는 1990년대 씨티은행,HSBC 등 글로벌 은행을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은 벤치마크 대상으로 '각국 지역 시장의 강자'를 꼽고 있다. HSBC는 아니지만 홍콩 HSBC는 벤치마크 대상일 수 있다는 것.세계적 강자가 됐지만 앞으로도 한눈 팔지 않고 해당 지역과 소매금융 분야에 관심을 두겠다는 뜻이다.

앙헬 산토도밍고 전략기획ㆍIR 담당 본부장은 "소매시장에서의 성장 가능성은 아직도 매우 크다"며 "앞으로 M&A와 함께 자체적인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