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 < LG전자 부사장ㆍjayhlee@lge.com >

얼마 전 신문을 보니 '정시 퇴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한다. '난 나야''아무도 날 건드릴 수 없어!' 이렇게 당당하고 독창적인 모습이 요즘 신세대 직장인들의 특징인데 새삼스레 거론되고 있는 정시 퇴근 문화 분위기를 보면 조금은 답답한 생각이 든다.

소위 '정시 퇴근 문화'라는 표현은 어떤 의미일까? 요즘 같은 때 퇴근시간이야 각자 알아서 하는 것이지 정시 퇴근이라니? 일이 있건 없건 간에 이제 정시 퇴근하기로 했으니 누구도 예외 없이 정해진 시간에 나가야 된다는 것일까? 이것이 디지털시대의 중심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일까?

그야말로 획일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일이 많으면 늦게 퇴근하면 되고 없으면 일찍 갈 수도 있는 것이지 꼭 정한 시간에 퇴근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또 다른 획일주의가 아닐 수 없다.

아마 본래의 의도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상사 눈치를 살피느라 별 할 일도 없으면서 퇴근하지 못하는 직원들을 생각해서 꺼낸 얘기일 것이라고 부득부득 생각의 합리화를 꾀해 보지만 그야말로 1970년대 흑백TV 시절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별로 할 일도 없는데' 늦게까지 남아 있도록 눈치를 주는 권위주의적인 문화일게다. 그러한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상향식 평가제도,다면 평가제도,고객부서의 평가제도 등을 통해 상사에게 직ㆍ간접적으로,그리고 수시로 피드백해 주는 방안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아이로니컬하게도 권위주의적인 관리자일수록 자기의 상사나 주변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자기 일을 즐기고 사랑하고 진짜 재미있어서 즐거이 고민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연히 정시 퇴근 운동 같이 불필요한 관제성(?) 캠페인을 벌여 밤낮 없이 일을 즐기는 그런 사람들을 난처하게 만들 필요는 없을 터다. 디지털 문화란 모든 사람이 각자 자기의 자율적인 의사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