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피해 기업 대출땐 신주 인수권 부여

"정부가 신용보증을 확대하고 은행들에 대출하라고 팔을 비틀어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

정부가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문제를 계기로 중소기업 지원 정책 방향을 '시장주의'로 수정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들이 수출기업들의 수출환어음 매입마저 축소할 정도로 돈줄을 조이는 마당에 금융당국의 '독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키코로 손실을 본 중소기업을 포함해 흑자도산이 우려되는 우량 기업 전체에 은행과 기업이 윈-윈(win-win)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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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정부가 마련 중인 은행 유인책의 핵심은 '리스크 부담에 걸맞게 성공이익을 향유할 수 있는 상품의 개발'이다. 이자 외에 신주인수권을 부여하고 기존 또는 신규 대출에 대해서는 전환사채(CB)로 전환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 자체가 향후 기업 성공에 따른 보상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업의 신용도와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은행의 직접평가를 기초로 대출 이자 외에 기업의 지분을 획득할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출 이자율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감면하되 기업 성공 시 이익의 상당 부분을 투자액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기존에 없던 유인책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원금만 보장되고 기업의 이자 부담을 낮추는 대신 이익은 기업의 성공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인컴본드(Income Bond) 등의 제도가 보편화돼 있다는 게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은행 평가에도 혜택


키코 관련 대출에 대한 출자전환 시 이에 따른 부실 책임을 면제하고 은행장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면책도 허용할 수 있다는 게 금융 당국의 방침이다. 배임에 따른 책임 논란으로 키코 손실 기업에 대한 지원에 소극적인 은행들을 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금융당국의 은행경영실태등급평가(CAMELS)에서 키코 관련 대출을 포함,중기 지원을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키코 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이 부도에 처할 경우 손실은 고스란히 은행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금융당국이 탄력적인 평가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코 선별 지원은 어려울 듯


정부는 이러한 지원 방안이 키코대책의 일환은 아니며 중소기업 전반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키코 관련 기업에 대한 선별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키코로 손실을 본 기업만 선별 지원할 경우 도덕적 해이나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며 "오버헤지를 했지만 영업이익이 나는 곳과 오버헤지를 하지 않아도 영업손실이 나는 곳을 어떻게 차등화시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채무조정이나 사적 워크아웃 등을 통해 키코 문제는 은행과 기업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되 이 과정에서 대출의 CB 전환과 같은 방법 등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안전장치가 있을 경우 실효성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대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지원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심기/정재형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