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정주 < 강남구청장ㆍimjmaeng@naver.com>

지금부터 10여년 전 파고다공원 근처에 있던 한문학원(書堂)에 논어(論語)를 배우러 다닐 때 일이다. 겨울철 그곳 사무실 연탄난로 위에는 늘 보리차 주전자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안에 앉아 계시던 노(老)선생님께서 "여보게,물 한잔만!" 하면 나에게 논어를 강의하시던 선생님(현재 강남방송에서 孟子 강의 중)은 얼른 "예" 하고는 보리차 한 잔을 쟁반에 얹어 가져다 드렸다. 나는 속으로 참 예순이 훨씬 넘으신 할아버지 선생님이 예의도 바르시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우연히 한 젊은 여성이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입사원서(入社願書)를 쓰는 모습을 목도하게 됐다. 집주소,본적,출신학교 이름 등 한자가 모두 엉망이었다. 물어보니 회사에서 원서를 한자로 작성하라고 했단다. 나는 대학을 갓 졸업한 이 여성의 입사원서를 대신 써줬다. 최근 언론에 우리 학생들의 한자실력이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문외한(門外漢)'을 '무뇌한(無腦漢)'으로,"모든 일이 수포(水泡)로 돌아갔다"를 "모든 일이 숲으로 돌아갔다"로 쓰는 웃지 못할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한자교육은 1970년 이전까지는 교과서에 한글 옆에 한자를 괄호안에 함께 표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1970년부터 초등학교 한자 교육이 전면 금지됐다. 또 대학입시에 한자가 출제되지 않으니 자연히 한자에 관한 관심은 시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위와 같은 웃지 못할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월부터 강남교육청이 관내 초ㆍ중학교에 한자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에 따른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그러나 현재 사교육이 담당하고 있는 한자교육을 공교육이 수용하게 되면 오히려 학부모의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우리말과 글을 잘하고,잘 쓰도록 하려면 한자ㆍ한문교육이 필수다.

한자ㆍ한문 속에는 삼강오륜(三綱五倫) 등 예의범절,철학이 깃들어 있어 60대 할아버지가 더 연세가 드신 80대 할아버지에게 기꺼이 보리차 한 잔을 가져다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어 조합력,단어 유추력과 문장 이해력을 키울 뿐 아니라 예의범절 생활철학까지 같이 배울 수 있으니 일석다조(一石多鳥) 아니겠는가. 강남구청이 강남교육청의 한자교육을 전폭 지원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