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화의 호기로 인식해 적극 공세

미국발(發) 금융불안이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 금융기관들은 국제화의 다시없는 호기로 보고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일본의 최대 은행그룹인 미쓰비시(三菱)UFJ피낸셜그룹은 미 증권사인 모건 스탠리에 최대 20%를 출자해 최대주주의 자리를 예약했으며,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野村)홀딩스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아시아·태평양 부문과 유럽·중동 사업 부문을 인수하기로 했다.

미쓰비시UFJ는 모건스탠리의 제3자 할당증자 때 최대 9천억엔의 수중 자금을 출자하게 되며 이사도 파견해 경영에도 직접 관여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획대로 출자가 이뤄지게 되면 모건의 수익 일부를 미쓰비시UFJ의 연결결산에 반영하게 된다.

미쓰비시UFJ는 이밖에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할 방침인 모건과의 은행 업무의 연대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쓰비시UFJ는 모건에 대한 출자로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에 비해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아온 국제업무를 대폭 강화, 세계적인 금융기관으로의 도약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무라는 리먼의 아시아 부문에서 일하는 종업원 약 3천명과 유럽·중동 사업 부문에서도 2천500명의 인력을 인계하게 된다.

영국의 바클레이즈은행과 경합한 끝에 유럽·중동 사업을 인수하기로 합의한 노무라는 리먼의 고용유지 우선 방침에 따라 종업원의 대부분을 승계하는 대신 가격 하락의 리스크가 있는 자산은 일체 인수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라는 기업의 인수·합병(M&A)과 투자 등의 노하우를 갖춘 우수한 인재를 확보함으로써 세계적인 증권사로의 발돋움을 노리고 있다.

미쓰비시와 노무라 이외의 다른 일본 금융기관들도 미국의 금융위기를 최대한 활용, 국제화를 가속화할 수 있도록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구미의 선진 금융기관들의 맹활약상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던 일본 금융기관들이 미국의 4대 증권사로 첨단 금융기법을 동원해 세계를 주무르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세계 초일류 금융기관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일본은 붕괴 직전의 금융위기에 봉착,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에 구원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다.

경영이 파탄났던 일본장기신용은행의 경우 미국계 펀드에 팔려 이름조차 생소한 '신생(新生)은행'으로 바꿔 달았다.

또한 지난해에는 일본 3대 증권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던 닛코(日興)코디얼증권이 미국의 시티은행그룹의 산하로 편입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작년 여름부터 시작한 미국의 저소득층 대상의 주택융자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세계 금융의 중심인 미국 월가가 송두리째 휘청거리면서 미국과 일본 금융기관의 공수(攻守)가 완전 뒤바뀐 처지가 됐다.

그동안 많은 희생과 비싼 수업료를 내고 터득한 일본의 금융위기 극복 노하우가 세계 금융불안을 해소하는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리먼브러더스의 경영파탄으로 시작된 현재의 미국의 금융위기는 1990년 후반 부동산 버블 붕괴 후 일본이 겪었던 상황과 '닮은꼴'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4대 증권사의 하나인 리먼의 도산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일본도 지난 1997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가 바로 증권회사의 파산에서 촉발됐었다.

당시 산요(三洋)증권이 1997년 11월 상장 증권사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의 파산보호에 해당하는 회사 갱생법의 적용을 신청하면서 도산한데 이어 불과 20일 후에는 100년 전통의 4대 증권사의 하나인 야마이치(山一)증권이 자진 폐업을 결정했다.

또 산요증권 도산 보름 뒤에는 주요 시중은행인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이 파산했으며 이듬해는 일본장기신용은행과 일본채권신용은행이 잇달아 파산보호를 신청하기에 이르는 등 일본 금융시스템을 통째로 뒤흔드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것은 당시 일본 금융기관의 경우 이미 해외사업에서 철수 또는 축소를 단행한 상태여서 세계 금융계에 대한 파급 영향이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금융기관은 글로벌화로 여파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것과는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당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0조엔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금융기관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을 인수해 처리하기 위한 공적 기구도 설립했다.

주요 증권사와 은행이 잇따라 쓰러지는 상황에서 '일본발 세계금융공황'에 대한 우려가 증폭됨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98년 공적자금 투입에 의한 파탄 처리와 주요 은행에 대한 자본 증강 등을 통해 금융위기를 수습하기로 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 금융기관이 세계의 금융불안을 진정시킬 구세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덕분이다.

물론 일본 금융기관들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많은 손실을 입었으나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에 비해서는 그래도 튼튼한 편이다.

일본 정부에서는 현재 미국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더욱 위축시켜 경기후퇴의 악순환으로 접어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가뜩이나 하강 조짐을 보이고 있는 국내 경기가 미국발 금융불안이라는 초특급 '쓰나미'에 휘말리지 않도록 금융시장 안정에 주력하고 있다.

일본 경제는 원재료 가격 폭등과 미국의 경기둔화 등으로 지난 4-6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연율 환산시 마이너스 3.0%를 기록한 상태다.

최근 금융시장 혼란으로 해외경제가 한층 악화될 경우 경기회복이 더욱 늦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이에 따라 일본 금융당국은 국내 금융기관의 원활한 자금 조달을 돕기위해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리먼 파산 이후 단기금융시장에 총 14조엔의 자금을 긴급 공급했다.

그뿐 아니라 구미 5개 중앙은행과 공동으로 달러화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시장에 300억달러에 달하는 달러화 자금도 사상 처음으로 풀었다.

그러나 일본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국제업무 진출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거액의 자금을 미국 금융기관 등에 쏟아부었으면서도 경영관리의 노하우가 부족해 현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던 1980년대 후반의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lh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