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우리를 말갛게 하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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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 시인ㆍ명지대 교수 >
천천히 그러나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있다. 햇볕마저도 깊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아침저녁 바람은 어제와 다르게 선득해지고 베란다의 플라스틱 화분도 파리해지고 있다. 눈을 기다랗게 뜨고 둔전대거나 한눈파는 일도 점점 잦아지는 즈음이다.
아침이면,운동장 옆 주차장 한갓진 곳에 파킹을 하고 자동차 열쇠를 뽑은 채 잠시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식구들과 더불어 두 시간 남짓 동동거렸던 아침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자동차에서 내려서면 일터다. 다시 동동거릴 것이다. 이 경계의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꽃이 피거나 낙엽이 지는 날이면 이 순간이 길어지곤 한다. 길어질 듯한 날이면 운전석을 뒤로 제치기도 한다. 누구도 아닌 채,아무의 간섭도 없이,별 생각도 없이,유일하게 나 혼자서 나일 수 있는 순간이다. 내가 즐기는 시간이다.
변신을 할 수 있는,이전과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는,그렇지,지금 이 순간! 이럴 때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내가 살며시 짝사랑하는 것들,안 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런 상념들이 사르르 물밀려오곤 한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했던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수필이 교과서에 실렸던 적이 있었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어디 그뿐인가. 가난한 노파의 눈물,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가을 들판의 연기 한 줄기,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그렇게 나를 슬프게 하는 순간이란 내 영혼을 말갛게 해주던 순간이자,기도의 순간이다.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에서 읽었던 짧은 글도 떠오른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 너무 전위적이어서 차갑고,너무 시니컬해서 우울하게 느껴졌던 그의 또 다른 내면을 엿보는 것 같아 얼마나 살가웠던지.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도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시에서 자신이 '더 좋아하는 것들'을 하염없이 나열하기도 했다. 이런 식이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등등.
가을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오고 있다. 지나가는 우리 삶의 순간들,사소한 편린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무심코 보내는 순간들이 바로 이 삶을 살게 하고 견디게 해주는 따듯한 위로이자 구원이 아닐까? 그러니 오늘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지금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당신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언제인지,누구의 어떤 말건넴이 당신을 빛나게 하는지를 헤아려보시라.화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들일랑은 나중으로 미루시라.정말,행복할 시간이 많지 않다. 틈나는 대로 한 가지씩만 추가해보시라.이 가을이 더욱 웅숭깊어질 것이다.
오늘 아침 주차 후에 나는 이런 순간들을 그렸다. 눈을 뜬 아침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때,오늘의 운세를 읽을 수 있을 때,그래 주차 후 자동차 열쇠를 돌려놓고 잠시 숨을 고를 때,커피 첫 모금 전의 커피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때…….
천천히 그러나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있다. 햇볕마저도 깊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아침저녁 바람은 어제와 다르게 선득해지고 베란다의 플라스틱 화분도 파리해지고 있다. 눈을 기다랗게 뜨고 둔전대거나 한눈파는 일도 점점 잦아지는 즈음이다.
아침이면,운동장 옆 주차장 한갓진 곳에 파킹을 하고 자동차 열쇠를 뽑은 채 잠시 유리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식구들과 더불어 두 시간 남짓 동동거렸던 아침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자동차에서 내려서면 일터다. 다시 동동거릴 것이다. 이 경계의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꽃이 피거나 낙엽이 지는 날이면 이 순간이 길어지곤 한다. 길어질 듯한 날이면 운전석을 뒤로 제치기도 한다. 누구도 아닌 채,아무의 간섭도 없이,별 생각도 없이,유일하게 나 혼자서 나일 수 있는 순간이다. 내가 즐기는 시간이다.
변신을 할 수 있는,이전과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는,그렇지,지금 이 순간! 이럴 때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내가 살며시 짝사랑하는 것들,안 할 게 분명하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런 상념들이 사르르 물밀려오곤 한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했던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수필이 교과서에 실렸던 적이 있었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이 떨어져 있을 때,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어디 그뿐인가. 가난한 노파의 눈물,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가을 들판의 연기 한 줄기,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그렇게 나를 슬프게 하는 순간이란 내 영혼을 말갛게 해주던 순간이자,기도의 순간이다.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에서 읽었던 짧은 글도 떠오른다. "나는 냉소적인 유머와 주근깨,여자들의 긴 머리와 무릎,자유롭게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골목을 뛰어다니는 어린 소녀들을 좋아한다. " 너무 전위적이어서 차갑고,너무 시니컬해서 우울하게 느껴졌던 그의 또 다른 내면을 엿보는 것 같아 얼마나 살가웠던지.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도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시에서 자신이 '더 좋아하는 것들'을 하염없이 나열하기도 했다. 이런 식이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등등.
가을이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오고 있다. 지나가는 우리 삶의 순간들,사소한 편린들은 얼마나 소중한가! 무심코 보내는 순간들이 바로 이 삶을 살게 하고 견디게 해주는 따듯한 위로이자 구원이 아닐까? 그러니 오늘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지금 당신이 더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당신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언제인지,누구의 어떤 말건넴이 당신을 빛나게 하는지를 헤아려보시라.화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절망하게 하는 것들일랑은 나중으로 미루시라.정말,행복할 시간이 많지 않다. 틈나는 대로 한 가지씩만 추가해보시라.이 가을이 더욱 웅숭깊어질 것이다.
오늘 아침 주차 후에 나는 이런 순간들을 그렸다. 눈을 뜬 아침 이불 속에서 게으름을 피울 수 있을 때,오늘의 운세를 읽을 수 있을 때,그래 주차 후 자동차 열쇠를 돌려놓고 잠시 숨을 고를 때,커피 첫 모금 전의 커피 향기를 맡을 수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