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기회복 대비, 만반 준비해야"
"육체적으로 강인했다면 더 생산적 역할 했을 것"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한국이 강력한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했지만, 운용 절차가 다양한 세력의 견해차를 해소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지 못했다"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효율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22일(현지시간) 오후 미 프린스턴대에서 `불확실성과 한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Uncertainty and Sustainable Economic Growth in Korea)'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국 정당들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와 갈등을 조정하여 실제 정책결정에 반영 될 수 있도록 합의를 도출해내는 방법을 아직 충분히 익히지 못했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그는 특히 "경제를 조정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완벽히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며, 이것이 한국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주요 방해물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또 "정부가 교육정책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 직접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대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고 이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나 간섭 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출마를 검토했다가 결국 불출마를 결정했던 정 전 총장은 "탄탄한 상식과 상당한 전문성을 결합하여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제도를 설계하고 시행할 만큼 역량 있는 지도자들을 국내의 교육기관들이 양성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질의 교육과 우수한 정치체계가 수립되면, 자신이 경영하거나 근무하는 기업에서 더 많은 투자를 촉진하고 생산능력을 십분 활용하며 추가성장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유능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더 많이 양성할 수 있게 된다"면서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한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프린스턴대 국제.지역학 연구원 초청으로 이뤄진 이날 강연에서 그는 한국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대해 "미.일.중.러 4강국의 세력권이 교차하고 있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최근 미국의 영향력 감소 및 중.일.러 3국의 민족주의 증대와 자기주장 강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세력균형이 불안정한 상태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총장은 또 "최근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건강과 관련한 불확실성은 적어도 핵 문제의 최종타결을 지연시킬 수 있다"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촉발된 미국 금융시장의 혼란이 전 지구적인 불경기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세계 경제의 변동에 쉽게 영향을 받는 한국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로선 한국 경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반드시 다시 찾아오기 마련인 차후의 세계적 경기회복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지금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라며 "무엇보다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향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정 전 총장은 숙련된 노동력 부족으로 인한 투자의 비효율성과 기업대출을 꺼리는 금융기관, 정부 정책의 일관성 결여가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하면서 "투자를 위해서는 즉흥적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장기 목표와 기초과학 보다는 단기 목표와 응용기술에 치중하고 있는 한국의 연구.개발(R&D)의 현실, 질과 창의력이 아닌 크기와 외양에 집착하는 교육현실을 개탄하면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대학교육을 위해서는 대학의 숫자와 규모를 줄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교육을 통한 차세대 리더의 양성을 위해서는 육체적 힘과 활력이 중요하다면서 "추운 겨울에 반바지를 입은 채 진흙탕에서 씨름을 했던 이튼 칼리지 출신들이 총리를 맡았던 19세기에 영국이 빅토리아 전성시대를 일궈냈다"며 "제가 육체적으로 강인했다면 교수나 대학총장으로서 보다 더 생산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