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낙선ㆍ낙천 정치인들이 주요 공공기관장에 잇따라 임명되고 있다. 지켜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낙선ㆍ낙천 인사들을 6개월간 절대로 공직에 기용하지 않겠다던 청와대의 약속이 이토록 쉽게 깨질지는 더 더욱 몰랐다.

약속을 깬 것은 그렇다치자.하지만 그들을 임명하는 과정이 치졸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임명 시점이 그렇다. 거의 모든 인사 발표가 금요일,그것도 저녁 무렵에 발표됐다. 언론이 '주말 모드'에 들어간 시점이다.

정부는 지난 금요일(19일)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정 신임 이사장은 15대부터 17대 국회에서 '정보통'으로 날렸던 3선 의원이지만 18대 총선 과정에서 낙천됐다.

이보다 한 주 전인 12일엔 한국마사회 회장에 김광원씨가,한국농촌공사 사장에 홍문표씨가 각각 임명됐다. 두 사람은 모두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 이명박계 낙선ㆍ낙천 정치인들이다. 홍문표 사장은 충남 홍성ㆍ예산에서 낙선했고,김 전 의원은 출마를 포기했다. 이날 역시 금요일이었고,보도자료는 늦은 오후에 배포됐다. 두 정치인의 농림수산식품부 주요 산하기관장 임명 소식은 추석 연휴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뿐만이 아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7월25일 한국광해관리공단 이사장에 총선 때 동해ㆍ삼척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 낙선한 이이재씨를 임명했다고 발표했고,금융위원회는 이에 앞선 11일 안택수 전 한나라당 의원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임명 제청했다고 밝혔다. 모두 금요일이었다.

정치인들의 공공기관장 임명이나 사실상의 내정 발표가 유독 금요일에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연의 일치라기보다는 '낙하산 인사'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두려워 평일에 비해 뉴스의 전달력이 떨어지는 주말을 발표 시점으로 택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기업들이 불리한 공시를 금요일 저녁 언론이 느슨해진 틈을 타 발표하는 것과 비슷한 행태다.

이쯤 되면 '낙하산은 금요일을 타고…'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엔 또 어떤 낙선ㆍ낙천 정치인이 낙하산을 타고 공공기관에 내려올지,궁금해진다.

류시훈 경제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