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신고 검증의정서 마련과 테러지원국 해제문제를 놓고 북한과 미국간 대립이 첨예화되면서 북핵 협상이 갈림길에 들어섰다.

특히 북한이 19일 외무성 대변인의 공식 발표와 고위 당국자의 공개 발언을 통해 '불능화 중단및 핵시설 복구'를 천명하며 미국을 압박했고, 이에 대해 미국도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미국, 중국 등 6자회담 핵심당사국들이 유엔 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에서 내주중 연쇄적인 회동을 가질 예정이라고 20일 외교부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의 위협전술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9일 미국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조치를 발효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 "미국의 본성이 다시금 명백해진 이상 우리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우리대로 나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변인은 "얼마전부터 영변 핵시설들을 원상복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도 앞서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경제.에너지 지원 실무회의에서 "10.3합의에는 핵신고서는 제출하게 돼있지만 검증이란 하게 돼있지 않다"고 '검증 의정서 마련이 테러지원국 해제의 전제조건'이라는 미국의 논리를 일축했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 매코맥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불능화 중단 및 핵시설 복구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아직까지 영변시설을 재가동한 상태는 아니지만, 원상복구를 하는 쪽으로 점점 근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현 상황을 규정했다.

그는 "북한의 움직임을 3단계로 나누어 판단할 수 있는데, 첫 단계에서 북한은 (불능화를) 되돌리겠다고 밝혔고, 2단계에서는 폐쇄된 영변 시설을 원상복구하기 위해 준비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영변 시설을 재가동해 플루토늄을 계속 생산하겠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2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단계별 위협전술을 구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이어 그는 "북한은 국제사회와 종전과는 다른 관계를 맺어 혜택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계속 고립시키면서 북핵 프로세스를 뒷걸음질치게 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선택에 따라 미국도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뒷걸음질'할 경우 미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등은 대북 에너지 지원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19일 남북 에너지 실무회의에서 이런 의사가 전달됐다.

한국과 미국, 중국 등 6자회담 핵심당사국은 북한의 핵시설 복구 움직임으로 인한 6자회담 변동성 확대와 김정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향 등 현안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위해 조만간 각종 회담을 진행한다.

우선 유명환 외교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내주초 뉴욕에서 회동,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설을 비롯한 북한 내부 동향과 검증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다.

또 유 장관은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양제츠 외교부장과도 회담할 예정이다.

북한 정보에 상당히 밝은 중국측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다시 한번 북한 내부 동향을 체크하는 한편 검증 고비에서 머물고 있는 북핵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 장관과 양제츠 부장도 별도의 회동을 갖고 6자 차원의 검증방안 합의 도출 가능성을 집중 타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함께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등 한미 6자 수석대표들도 21일 오후 뉴욕서 회동, 19일 판문점에서 나타난 북한의 검증 관련 입장을 중심으로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주 뉴욕에서 벌어지는 연쇄 외교 이벤트의 결과에 따라 북핵 협상의 향방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미국, 중국이 북한의 입장을 감안해 보다 신축적인 검증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중국이 북한에 전달한 뒤 북한의 반응이 긍정적일 경우 6자회담은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선국면에 접어든 미국이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중국과 한국도 특유의 중재노력을 하지 못할 경우 6자회담은 장기 교착국면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북한이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위협전술을 지속적으로 구사할 경우 한반도의 위기지수도 함께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lw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