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호 < 인천대 교수ㆍ경제학 >

신용회복기금이 지난 2일 출범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금융 소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작은 출발이다. 기존의 일회성 정책과 달리 지속 가능한 신용회복 지원 체계를 갖추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 '시장'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본래 정책 기조와는 달리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형태의 공적 정책기구를 전면에 내놓았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금융 양극화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일 게다.

문제는 재원이다. 기금의 운영과 종합자활지원 네트워크 등 다양한 통합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풍부하고 안정적인 재원 공급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 중 은행 등 금융기관에 돌아갈 배분금의 일부인 7000억원을 신용회복기금에 출연토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출연의 대가로 받는 배분금 1조6000억원 중 절반 가까운 금액을 다시 내놓아야 하는 은행들의 입장은 그리 편하지 않을 것이다.

초과 이익이 발생할 경우 법적으로는 각 은행의 출연 비율에 따라 배분금을 나누어 갖는 것이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외환위기 이후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부실채권정리기금의 목적이 금융기관의 천문학적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함이었고,10년이 지난 지금 기금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은행들인 점을 감안할 때 은행들이 기금 출연의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더구나 720만명에 이르는 금융 소외자들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양산된 사회적 희생자로 본다면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운영해 온 부실채권정리기금 잉여금을 신용회복기금의 재원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동의는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금융 소외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추가적인 재원 마련은 사회적 합의와 금융 소외 현상의 발생에 대한 논리적 진단에 의해 강구되어야 한다.

자칫 정부 지원의 수혜를 받고자 빚을 제때 갚지 않는 등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대상자의 채권 확인이나 대상 여부 등을 증빙하는 객관적이고 투명한 방법을 대안으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원금 탕감 없이 민간 재원을 최대한 활용해 지원한다는 원칙을 마련하거나 최근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대부업법 또는 신용정보법 등 관련 법 개정 및 제도적 장치를 통해 금융 소외자 보호 지원 대책의 실효성이 배가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