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월가의 상징이었던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과 메릴린치 매각, AIG의 구제금융 수혈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다시 난기류에 빠지고 있다.

당분간 이런 국면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 미국 정책당국과 정책,금융시스템,금융상품 등 그 어느 것 하나 믿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자자들이 믿을 곳이 없다면 '카더라'식 정보와 소문에 쉽게 영합하는 '부유(浮遊)장세'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최근처럼 부유장세일 때 관행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전통적인 안정수단인 금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 세계경기 둔화에 따른 산업용 수요급감 등을 감안하면 금 가격은 하락요인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70달러 이상 폭등하는 것은 투자자들의 심리가 얼마나 불안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과 함께 이제는 부동화된 자금도 시장에서 아예 퇴장당하는 경향이 눈에 띈다. 길게는 모기지 사태 이후,짧게는 리먼 사태 이후 슈퍼리치들 사이에 금고 보유대수가 늘어나고,대표적 단기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자금이 이탈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금과 금고를 집중적으로 취급하는 종로의 도매상들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통화유통 속도와 통화승수의 시계열 자료를 보면 작년 10월 이후 감소세가 뚜렷하다. 다른 요인보다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보유 성향이 높아져 경제 전체에 돈이 돌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게 해당 중앙은행의 분석이다.

한 나라 경제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손발에 해당하는 중소기업과 소득이 낮은 하위계층일수록 어려움에 봉착한다. 이 때문에 일부 개도국의 하위계층 사이에는 결제수단으로 현금보다는 지역단위 화폐 등 대안화폐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상품권,쪽지,열쇠고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오랜만에 채권시장에서도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 2001년 이후 저금리 국면이 지속되면서 슈퍼리치들 사이에는 채권과 채권형 상품투자를 의도적으로 피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경향이 높아지면서 채권과 채권형 상품이 '재테크 시장의 오아시스'라 불릴 만큼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국채일수록 인기가 높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현 시점에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불안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안전자산 선호경향이 특정시점에서 불안감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면 어느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점이다. 이번 모기지 사태에서 보듯이 재테크 생활자들은 본능적으로 위험 회피보다는 높은 수익을 더 선호하는 욕망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 때문에 위험하지만 다른 재테크 수단에 비해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는 주식 및 주식형 펀드를 모기지 사태와 같은 위험요인이 발생한 이후에도 '그래도 괜찮겠지'하는 여운과 기대감으로 매도 혹은 환매 시점을 놓치고 최근처럼 많은 손실을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겸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