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에 대한 850억달러의 구제금융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 리스크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이 때문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미 경제가 2차 위기에 직면하는 등 심각한 악영향이 지속될 것이라는 경고를 내놨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17일 조지타운대학에서 열린 질의응답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금융위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외면하는 상황이 되면 미국 경제는 제2차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전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부실 금융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일이 계속 이어지면 미 국채를 사들였던 외국 투자자들이 겁을 먹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존 스노 전 미 재무장관도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금시장 경색을 조속히 해결하지 못하면 매우 심각한 경기하강에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한 뒤 "경제는 2009년 어려운 해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AIG 같은 보험사들은 너무 복잡하고 사업영역도 넓기 때문에 주별로 규제하는 방식은 보험사들을 감독하는 데 적절치 않다면서,이는 리스크 관리시스템의 커다란 파열이라고 지적했다. 스노 전 장관은 "금융 서비스 규제 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너무 조급하게 개편에 나서는 것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채권 투자회사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공동 최고경영자(CEO)는 CNBC와 인터뷰에서 "미 정부의 AIG 구제가 불확실성을 줄였다는 점에서는 금융시장에 조금 도움이 되겠지만 아주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이유로 진행 중인 신용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이번 조치가 단편적인 접근법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시스템 안정에 '올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리언은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너무 많은 공적자금을 지원해 FRB의 추가 자금 공급 여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AIG 구제책에도 불구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리보(런던 은행 간 금리)가 급등하고 증시가 급락한 것은 미 금융당국에 대한 시장참가자들의 신뢰가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신뢰가 부족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경제의 산소인 신용 없이는 전 세계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며 "전 세계적으로 경제 하강이나 침체가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로버트 새뮤얼슨 워싱턴포스트 객원 칼럼니스트도 '드러나는 월가의 진실'이라는 기고문에서 "월가에서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월가의 사업모델 붕괴"라며 "위기가 언제 끝날지 분명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새뮤얼슨은 "더 많은 금융회사들의 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금융위기는 전쟁과 마찬가지로 오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알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위기가 바닥에 근접해가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피터 스와브렉 아시아지역 최고운영책임자(COO)는 18일 "미국 금융위기가 바닥을 형성해가고 있으며 위기 해소에는 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990년대 초반 일본도 유사한 금융위기를 겪었으나 적극적인 해결 노력을 하지 않아 이후 10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었다"며 "하지만 미국은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어 회복 시기를 앞당길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