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경제강국인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금융위기로 1조달러에 육박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한 탓에 자칫 국가신용등급마저 하향 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에서 시작된 신용위기는 실물경제인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미 정부가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구제금융을 단행하면서 올 들어 투입한 공적자금은 9000억달러에 달한다. 급기야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존 체임버스 국가신용등급위원회 의장은 17일 "AIG 구제금융 조치 이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에 (하향) 압력이 쌓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국가신용은 최고등급인 AAA이지만 공적자금을 더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신용등급을 낮출 수 있다는 경고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이 금융시장을 구제하려면 1조달러,많게는 2조달러까지 쏟아부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물경제의 축인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급격히 악화되는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릭 왜고너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월가에서 들려 오는 나쁜 소식이 어떤 충격파를 던질지 매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자동차 판매 관련 소비자금융이 훨씬 빡빡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숨통을 틀 수 있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금리를 인하해 달라고 촉구까지 했다. GM은 지난해 말 이후부터 7일물 기업어음(CP) 시장에서 가장 높은 이자를 물고서라도 자금을 최대한 끌어당겨 보겠다는 의지다.

미 최대 백화점업체인 시어즈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30일짜리 CP를 발행하는 데 최고의 이자를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미 3위 지역전화업체인 퀘스트의 에드워드 뮬러 최고경영자(CEO)는 "장기로 자금을 확보해 놨으나 하루하루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전했다. 미 1위의 케이블TV업체 컴캐스트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마이클 앙겔라키스는 "월가의 위기가 소비시장으로 전파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보브 라덴버그 탤만 애널리스트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몸조심에 나선 은행들이 자체 실탄을 챙겨놓느라 기업들과 일반 소비자들에 대한 대출 조건을 부쩍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채 발행금리의 기준이 되는 리보금리가 이날 0.19%포인트 올라 연 3.06%에 달한 것은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얼마나 급격히 험악해졌는지 잘 대변한다.

뉴욕=이익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