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등 국제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해온 IB(투자은행)들이 줄줄이 주저앉았다. 세계적 금융위기의 뇌관이 된 이들 IB는 우리 금융회사들이 지향해야 할 모델로 간주돼 왔던 게 사실이고 보면 참으로 충격이 크다.

미국 IB의 몰락(沒落) 원인은 한마디로 지나친 과욕과 부실한 리스크 관리에 있다. 이들은 수익극대화를 목적으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고 이를 영업의 주력 수단으로 삼아왔다. 증권 등을 담보로 파생상품을 만들고,또 이를 담보로 다른 파생상품을 만드는 식의 행태를 되풀이해 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를 얻기 위해 차입금 등 외부자금을 끌어들여 투자금을 몇 배,몇 십배로 키우는 것도 예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연쇄적 파생상품 만들기는 그 자체적으로 위험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한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줄줄이 사탕식으로 다른 상품에도 문제가 번지게 되는 까닭이다. 미국 부동산경기 하락에서 비롯된 서브프라임 사태가 대형 IB들의 몰락을 초래하고 결국 세계 금융위기로까지 연결된 것도 바로 이런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미 언론에 따르면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는 문제자산 규모가 자본금의 2.2배 및 1.9배에 달했고 위기를 비켜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도 이 비율이 1.2배와 1.7배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투자은행들의 지나친 욕심에 근본적 원인이 있지만 감독을 느슨히 한 금융당국 또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우리 금융회사들은 경쟁적으로 '한국판 메릴린치'를 꿈꿔 왔지만 제대로 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뒤따르지 못할 경우 그것은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 까닭이다. 물론 투자은행 모델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면서도 리스크 관리를 태만히 한 게 문제라는 뜻이다.

따라서 IB를 지향하는 금융회사들은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리스크 관리 체계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금융당국 또한 글로벌 IB 육성정책에 허점은 없는지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건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꾸준히 제도를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