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9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 예산안이 여야가 합의했던 처리 시한인 11일까지 난항을 거듭했다.

이번 추경의 핵심 내용은 치솟았던 국제유가에 따른 대책 마련으로,일용직을 포함한 연소득 3600만원 이하의 서민들에게 6만~24만원을 지급하는 유가환급 방안이 포함돼 있다. 유가 문제가 심각했던 지난 6월23일 관련 법안이 국회로 넘어왔지만 3개월 가까이 국회에 잡혀 있는 셈이다. 민생 살리기에 앞장서야 할 국회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여야 간 가장 큰 쟁점은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에 대한 보조금 지원 문제다. 정부여당은 원가 상승에도 전기ㆍ가스요금이 동결되면서 두 회사가 큰 적자를 본 만큼 한전과 가스공사에 각각 8350억원과 4200억원의 보조금을 추경 예산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추경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하반기에 전기ㆍ가스요금이 큰 폭으로 오를 것"이라며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보조금 지급은 불가피하다"고 야당을 압박했다.

반면 민주당은 두 회사가 자체적으로 원가 절감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손실이 나자 정부에 손부터 벌리고 있다며 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박병석 정책위 의장은 "지난해 한전과 산하 자회사의 순이익이 3조원이 넘어 올해 손실분을 메우고도 남는다"면서 "한전은 유가 상승으로 1조원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지만 이것도 증명하기 힘든 예측치"라고 반박했다.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자구 노력을 한다면 요금 동결이 가능하다는 게 민주당의 반대 논리다.

특히 최인기 예결위 간사는 "정부 예산으로 상장기업을 지원한 사례가 없다"며 "지난해 수익을 주주들이 배당받은 상황에서 손실분을 정부가 보조하는 것은 주주들의 배만 불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권경석 한나라당 의원은 예결위 회의에서 "해당 기업에 직접 돈을 주지 말고 '요금안정화 사업'과 같은 사업 항목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원하자"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여기에 추석 민심을 둘러싼 정치적 이해까지 겹치면서 추경안 처리는 더욱 미궁에 빠진 형국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