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내구성 소비재 중 주택 다음으로 큰 돈을 지불해야 하는 대상이다. 또 부동산인 집과는 달리 타고 다니며 남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주택은 일반적으로 오래 지니고 있을 수록 가격이 오르는 속성을 지녔다. 그러나 자동차는 대부분의 소비재처럼 누군가의 소유가 되면서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한다. 소위 말해 자동차등록증이 나오는 순간부터 '중고차' 대열에 끼어들어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자동차가 똑같은 비율로 감가되는 건 아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다.

1년 전 9000만원짜리 수입차를 리스로 산 A씨는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리스료가 부담스러워지자 좀 더 싼 차로 바꾸기 위해 중고차 매장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중고차 업자가 제시한 금액은 새차 가격보다 3000만원이나 낮은 6000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등록비용까지 감안하면 1년 새 4000만원 가까이 날아가는 셈이다. 집과 직장이 멀어 주행거리가 좀 많았다고는 해도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A씨는 결국 자동차 파는 걸 포기했다.

자동차업계의 무리한 프로모션이나 업체 간 가격 경쟁 등으로 인해 A씨 같은 피해자가 양산되고 있다. 서울오토갤러리에서 중고차매장을 운영 중인 B씨는 "차를 사는 사람들 중에는 각종 프로모션 등의 판촉조건에 이끌려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프로모션이 걸렸던 차를 되팔 때는 손해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즉 싸게 사면 팔 때 그만큼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중고차업계에 따르면 수입차의 경우 일반적으로 구입 후 1년이 지나면 소비자가격의 20% 정도가 떨어진다. 또 2년차부터 4년차가 될 때까지 매년 10% 정도씩 하락,5년 후쯤엔 구입가격의 절반 정도 수준이 된다. 그러나 업체 간 신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각 업체들이 차값을 내리거나 할인판매를 실시하자 해당 모델들의 중고차 가격은 구매한 지 1년이 채 안 됐는데도 30~40%씩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렉서스의 구형 모델인 LS430은 다른 업체에 비해 중고차 가격 하락률이 낮았으나 신형인 LS460L이 나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당시 출시가격이 1억6300만원인 이 차는 지난해 말 2000만원 가까이 할인판매되면서 차를 되팔 때의 가격이 1년 만에 30% 정도나 떨어졌다. 이런 상황은 BMW 528,벤츠 S클래스,아우디 A6 등에서도 나타났다. 이들 업체는 해당 모델의 차값을 1600만~3000만원 정도 인하해 소비자들의 칭찬을 들었으나 이 차를 산 고객들에게는 큰 손해를 안겨줬다.

'리세일 밸류'라고 불리는 중고차 가치,즉 잔존가치는 선진국에서 자동차 구입시 매우 중요한 선택 요인이 된다.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산 내 차가 다른 사람의 차보다 중고차시장에서 값이 덜 나갈 때 유쾌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이유로 완성차업체들은 제품의 잔존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요즘 국산차,수입차할 것 없이 자동차 업체들의 제품광고를 보면 브랜드 이미지나 차의 가치보다는 판매조건을 더 확실히 알리지 못해 안달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그 차를 타고 있는 고객들의 재산 손해는 안중에도 없는 듯이 비쳐진다.

강호영 오토타임즈 대표 ssyang@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