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양대 모기지업체에 2000억弗 구제금융] "금융 붕괴 막아라"…월街도 놀란 파격지원
미국 정부가 일요일인 7일(현지시간) 밤 양대 모기지(주택담보대출)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 정상화를 위해 2000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결정한 것은 글로벌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긴급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조치로 신용경색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면서 달러화 가치는 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108.6엔대로 뛰었다.

◆금융시장 복원에 초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7일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단행해 양사의 경영권을 인수한 것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긴급히 필요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해외 투자가들로부터 신뢰를 잃어가는 미국 금융시장을 복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분석했다. 양대 모기지회사의 채권을 많이 갖고 있는 중국 러시아가 최근 보유 비중을 크게 낮추고 있으며,중동 국부펀드들도 투자를 꺼리는 현상이 빚어지자 서둘러 구제금융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미 재무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 러시아 한국 중앙은행 등을 포함해 외국 투자가의 두 회사 채권에 대한 투자액은 1조3000억달러에 달한다. 신용경색으로 수요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이들 투자가들이 보유채권 일부를 내다팔게 되면 미국 금융시장은 또다른 위기를 맞게 된다.

미 재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 정부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각 1000억달러씩 총 2000억달러를 투입,기존의 우선주보다 우월한 권리가 보장된 '선순위 우선주'를 매입해 경영권을 확보하게 된다. 우선 1차로 조만간 각 10억달러씩,20억달러를 투입해 선순위 우선주를 매입하며 이 주식에 대해선 연 10%의 금리를 적용해 배당을 받기로 했다. 공적자금 투입에 따른 납세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기존의 보통주와 우선주에 대해서는 배당을 중지키로 했다. 이에 따라 기존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될 공산이 커졌다. 양사 우선주를 대거 가진 JP모건체이스 소버린방코프 등이 적지 않은 피해를 볼 전망이다. 특히 양사 우선주에 투자한 지방 중소형 은행들의 파산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이들 금융사를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마켓워치가 보도했다.

양사의 기존 경영진은 경영상의 책임을 물어 모두 퇴진시키기로 했다. 패니매의 신임 CEO는 메릴린치의 이사회 부의장을 역임한 허브 앨리슨,프레디맥은 US뱅코프의 이사회 부의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모페트가 각각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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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의 고통 줄이는 진통제"

바니 프랭크 하원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조치가 주택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관리를 받게 되는 양사가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 모기지 금리는 떨어지게 된다. 모기지 금리가 1%포인트가량 하락하면 주택구입자의 주택구입 비용 부담을 15% 정도 덜 수 있다.

그러나 양사의 정상화 및 주택시장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회의론도 없지 않다. 양사의 건전성 감독이 소홀했던데다 보유 자본 대비 양사의 영업 규모가 너무 큰 탓에 리스크가 완전히 제거되기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이와 함께 지난 3월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에 대한 구제금융 단행 때처럼 이번에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돼온 회사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대한 도덕적해이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재정적자가 악화되면서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할 경우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이번 구제책이 당장의 고통을 줄이는 '진통제'에 불과하며 오히려 위기를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연구소인 그레이엄피셔의 조슈아 로스너는 "사태가 일본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과거 일본처럼 정부가 나서 위기에 빠진 은행들을 구제하면서 오랫동안 금융시스템의 침체가 이어진 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월가는 이제 주요 금융회사의 3분기 실적과 주택시장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미 신용위기가 해소되려면 주택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