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의 불후의 명작이 된 말이 있다. '문제는 경제야,이 멍청아!(It's economy,stupid)'다. 1992년 미국 선거전이 시작됐을 때,시골 아칸소의 주지사였던 클린턴이 당시 대통령이던 아버지 부시 후보를 한방에 쓰러뜨린 촌철살인의 구호였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어 무려 90%가 넘는 국민 지지 속에 느긋해 있던 부시는 경제문제를 치고 나온 클린턴에게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문제는 경제야'하는 말은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고 각국 선거판의 단골메뉴가 되다시피 널리 애용되고 있다. 냉전시대의 관심 주제였던 '외교ㆍ안보'가 '경제'로 대체된 셈인데,무엇보다 먹고 사는 일이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선에서도 경제문제가 가장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면서 이 말이 요모조모로 쓰였다.

두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이번 미 대통령선거에서 두 진영은 경제문제로 다시 충돌하고 있다.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와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는 전당대회가 끝난 뒤, 처음 가진 주말 유세에서 세금과 일자리 창출,실업률을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논란이 될 성 싶었던 피부색이나 나이는 뒷전이었다. 특히 미 경제가 침체국면에 처해서인지 아직 자신들의 개성을 한껏 과시하는 여유는 없어 보인다.

따지고 보면 국가 지도자의 첫 번째 덕목은 국민들의 등을 따뜻하게 하고 배를 불리는 일이다. 일찍이 맹자가 정치의 요체로 언급한 '무항산자무항심(無恒産者無恒心)'이다. "생활의 안정을 얻지 못하면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없어 차분히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앞으로 공화,민주 두 후보 사이에 '멍청이' 공방은 치열해질 게 분명하다. 누가 설득력 있는 서민경제 회생방안을 제시하느냐가 관건(關鍵)이다.

'지도자는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라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말을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는 경제야'하는 이슈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