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1930년 8월4일.대공황이 휩쓸고 있던 뉴욕에는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 만한 점포가 하나 등장한다. 대부분의 식료품점이 게딱지 만하던 시절,이 가게는 170평의 초대형 규모로 문을 연다. 가게 이름도 당시 유행하던 영화 주인공 킹콩의 이름을 따서 킹컬른(King Kullen)이라고 붙인다. 사람들은 이것을 슈퍼마켓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초대형 시장이라는 뜻이다.

슈퍼마켓은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불황으로 고통 받고 있던 서민들에게 생필품을 누구보다도 값싸게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것은 점포의 대형화였다. 점포의 크기를 크게 늘리다보니 단위 면적당 점원의 수를 줄일 수 있었고,또 대량으로 구매를 하다보니 구입단가도 떨어졌다.

점포 대형화의 이점이 드러나면서 미국의 유통업은 급속하게 재편돼 간다. 가격 인하와 쇼핑의 편리함을 제공하기 위한 경쟁이 불붙는다. 점포들은 하나둘씩 대형화의 길을 걸었고,여전히 비싼 값을 고집한 영세업소들에는 소비자의 발길이 잦아들었다. 이제 미국에는 우리나라 같은 영세점포들은 찾기 어렵다. 작은 규모로는 값이나 품질 면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매업의 역사는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 자영업자 문제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영업자나 재래시장 상인들이 어려운 것은 단순히 불황 때문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근본원인이다. 소비자마다 자동차를 갖게 되면서 대량 쇼핑을 할 수 있게 됐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는 쇼핑에서도 편리함과 재미와 안락함을 원하게 됐다. 비 안 맞고 냉난방 잘되는 쾌적한 공간에서 쇼핑하기를 바란다. 또 단순히 물건을 사기보다는 식구들이 모두 나들이 삼아 나올 수 있는 장소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형점의 등장을 억지로 막는 정책은 제대로 된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소비자들에게 재래시장의 불편을 감수하라고 강요하는 정책인 셈이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대형점이 너무 부족하다. 주말에 할인마트들을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런 사정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 쇼핑객이 많아서 카트를 끌고는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을 지경 아닌가. 수많은 소비자들이 대형 할인마트를 원하고 있는데 정작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점포는 부족하기 때문에 예전의 만원 버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해법은 대형 할인점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영세업자를 설득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소비자에게 싸고 좋은 제품을 제공할 수 없다면 유통이 아니라 다른 일을 찾는 것이 옳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설득이 필요하다. 따지고 보면 지금 우리가 자영업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과거의 행상이나 좌판들과 비교하면 대형업자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행상이나 좌판을 물리치고 자영업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만약 행상이나 좌판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 자영업자의 출현을 규제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의 유통업은 행상 수준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불친절과 높은 가격,불안한 품질에 시달렸을 것이다.

가진 자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형할인점의 주인은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주식소유자들이다. 또 그 주식에 투자한 셀 수 없는 펀드투자자들의 소유이다. 대형할인점이 돈을 번다고 해서 소위 가진 자들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영업자 문제는 무엇이 소비자의 이익과 부합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해법은 소비자의 선택이 작동하도록 시장을 풀어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