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 빠진 건설사를 지원하기 위해 지난 4월 출범한 금융회사들의 '대주단(貸主團) 운영협약'이 겉돌고 있다. 대주단 운영협약이란 유동성 위험에 빠진 건설사가 가입을 요청해오면 채권행사를 1년간 유예해주기로 한 협약.하지만 이 협약이 출범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지만 가입한 건설사는 단 한 곳뿐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협약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단 한 가지.금융회사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것이다. 은행 보험 저축은행 보증기관 등 235개 금융회사 가운데 이 협약에 가입한 곳은 70%에 불과하다. 미가입 금융회사들이 개별적으로 채권행사를 할 수 있는 '반쪽짜리 협약'이라는 얘기다.

협약에 가입한 은행들도 "지금 같은 대주단 체제로는 건설사가 협약에 가입하는 순간 부실회사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돼 오히려 자금난을 부추길 게 확실하다"고 인정할 정도다. 때문에 자금난이 한계 상황에 봉착한 중소 건설사들은 물론 부동산 PF 대출비중이 25%가 넘는 저축은행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시중에는 부도위기에 처한 특정 건설사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고 조그만 건설사의 경우 이미 저축은행들이 자체 워크아웃을 실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80조원 안팎의 부동산 PF대출 만기가 대거 몰려있는 내달 말이 고비라는 '9월 위기설'도 증폭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창구지도 역시 약발이 먹히지 않자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낼 것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아직까지 서로 눈치보기만 하고 있다"면서 "결국에는 알 만한 건설사가 부도를 맞아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푸념했다.

각 증권사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무턱대고 PF 대출을 늘린 곳이나,자기만 살겠다고 협약가입을 미적거리는 금융회사 모두 모럴해저드에 빠져 있다"면서 "이런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실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심기 경제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