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M&A(인수.합병)에 성공한 기업들이 증시에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인수 과정에서의 과도한 차입이 재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29일 오후 2시 22분 현재 두산두산인프라코어가 하한가까지 떨어졌고, 두산중공업과 두산건설은 각각 14.53%, 10.47% 폭락했다.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이 각각 5억1900만달러, 4억8100만달러씩 10억달러를 지난해 말 인수한 밥캣에 추가 출자한다고 지난 28일 밝힌게 직격탄이었다.

두산그룹은 세계 최대 중소형 건설장비 업체인 밥캣을 51억달러에 인수하기 위해 29억달러에 달하는 돈을 차입해 왔다. 이 때 밥캣이 창출하는 에비타(EBDTIA)의 7배를 넘을 수 없도록 차입약관에 명시한 것이다.

에비타는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으로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창출 능력을 보여준다.

차입 약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올해 밥캣의 에비타가 4억1400만달러 이상이어야 하지만 실제 에비타는 3억1000만달러에 그칠 것이라는게 밥캣측과 증시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따라서 차입금 29억달러에서 에비타의 7배를 뺀 8억달러 가량은 갚아야 하는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두산그룹이 증자를 통해 차입금 감축에 나선 것이다.

양희준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증자로 유입된 현금 중 8억달러로 차입금 일부를 조기 상환해 올해 말 차입금 규모를 에비타의 7배 이내 수준인 21억달러로 낮춘다는 계획"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북미와 유럽의 경기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져 에비타가 더 감소할 경우 추가적인 증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밥캣이 두산그룹의 유동성을 흔드는 '돈 먹는 하마'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외국계 투자기관들도 우려를 내놓고 있다. 메릴린치는 "취약한 재무상태와 현재 시장상황을 감안할 때 자금조달은 부담스런 과제이며, 수요 둔화가 지속될 경우 추가 자금 투입이 필요할 수 있다"며 두산인프라코어의 목표주가를 4만원에서 2만3000원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미국 건설 기자재 수요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위험요소로 지적했다.

노무라증권 역시 밥캣의 실적 부진이 차입 약관 때문에 곧바로 두산인프라코어의 재무 위험으로 이어지며, 추가 증자 가능성을 들어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전환했다.

M&A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는 앞서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불거졌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유동성 우려의 시발점이었던 금호타이어의 2대주주 쿠퍼타이어의 지분을 투자전문회사에 전량 매각하는 한편, 4조5000억원에 이르는 유동성 확보 대책을 내놨음에도 시장의 시선은 싸늘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12월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내년 말로 예정된 옵션만기일에 수익률을 보장하는 '풋백옵션' 조건을 걸었다.

이 때 투자자들에게 보장한 대우건설 주가가 최소 3만4000원인데 29일 현재 주가는 1만1000원대로 떨어진 상태다. 풋백옵션에 따라 투자자들의 주식을 되사려면 4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대표 계열사인 금호산업이 29일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주가는 금호그룹측의 적극적인 자금 확보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불신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이 밖에 세계 최대 크루즈선 업체인 아커야즈 지분을 최근 추가 매수해 인수한 STX와 STX조선도 29일 나란히 52주 신저가를 기록하는 등 8월 한달동안 39%, 34%씩 급락했다.

이들 기업은 외부 차입을 통해 M&A 자금을 조달한 경우인데, 최근 국제 신용시장이 경색되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시장의 따가운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시장 환경이 좋을 때는 환영받던 M&A가 경제환경이 바뀌면서 평가가 달라졌다"며 "일부 그룹은 실제로 능력에 맞지 않게 과도한 차입과 지급보증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승자의 저주'가 주식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한경닷컴 박철응 기자 he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