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간첩교육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한 여간첩이 군 장교 등에게 성(性)을 무기로 접근해 군사기밀을 빼내 북측에 유출하다 공안당국에 붙잡혔다. 이 여간첩은 군 장교들의 명함 100여장을 북측에 넘겨 이들의 이메일 중 일부가 중국에서 해킹을 당하기도 했다.

수원지검，경기도경찰청，기무사，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27일 위장 탈북한 뒤 국내에 들어와 군 장교 3~4명 등에게 접근해 입수한 군사기밀 등을 북측에 넘긴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직파간첩 원정화씨(34ㆍ여)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또 원씨에게 탈북자 명단 등을 넘겨준 육군 황모 대위(27)와 원씨에게 받은 정보를 북측에 제공한 남파간첩 김모씨(63)도 구속했다.

◆대북정보요원 살해 시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인 원씨는 1998년 중국에서 간첩 활동을 하다 2001년 조선족으로 가장해 남한 남성과 결혼한 뒤 임신한 채 국내로 들어왔다. 원씨는 입국 직후 국정원에 탈북자로 위장 자수했으며 이후 군 부대를 돌며 반공 강연을 하면서 알게 된 황 대위 등 부대장교 3∼4명에게 이성 교제를 미끼로 접근해 군사 기밀을 빼냈다.

원씨는 탈북자 단체 간부와 군 정보요원들과도 접촉해 북한 노동당 비서로 귀순한 황장엽씨 등 주요 인물의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군부대 장교들에게 받은 명함 100여장을 북측에 넘겨 일부 장교들의 이메일이 해킹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군부대에서 50여차례 반공 강연을 하면서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내용을 전파하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그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군사 기밀과 탈북자 정보를 관리하는 남성들에게 접근했으며 구속된 황 대위와는 동거까지 하는 등 성을 도구로 이용했다. 황 대위는 원씨의 신분을 알게 됐지만 오히려 이를 숨겨주고 원씨에게 주요 탈북자 명단까지 제공했다.

또 원씨는 지령에 따라 대북 정보요원들을 살해하려 기도했고 교제하던 김모 소령도 중국으로 유인하려 하는 등 테러행위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지령

이번 간첩사건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양상을 보여줬다. 과거 남파 간첩들은 위조된 신분증으로 남한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거나 제3세계 외국인으로 국적을 세탁하고 무전기와 난수표를 이용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뒤 북한이 보내준 공작금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원씨는 탈북자로 위장해 대북 무역사업을 하며 중국과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공작자금을 스스로 벌어 쓰는 것은 물론 난수표 대신 휴대폰으로 지령을 받았다. 또 탈북을 가장하면 북한 말씨를 쓰고 남한 사정에 다소 어둡더라도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점도 적극 활용했다.

◆현역장교 포섭 충격

군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위관장교가 여간첩에게 포섭돼 간첩활동을 방조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초급 간부교육에 특단의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황 대위는 당시 안보강연 차 소속부대를 방문한 원씨를 안내한 뒤 연락을 주고받다가 급기야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말았다. 황 대위는 작년 1월부터 지난 4월 사이 원씨의 대북무역 자료 가운데 팩시밀리，명함，서적 등 급히 소각할 문건을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경기도 군포 소재 한 식당의 소각장에서 소각하기도 했다.

신장 158㎝에 말투는 거칠고 직선적이지만 작심하고 덤벼드는 원씨에게 군인 신분을 망각한 채 간첩활동을 방조한 것.수사기관 관계자는 "원정화는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다"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황 대위가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 누나와 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씨는 작년 10월 황 대위에게 "나는 북한 보위부 소속 공작원이다. 내 임무는 탈북자 출신 안보강연 강사 신원을 확인해 북한에 보고하고 군 간부를 포섭하는 것이다. 너도 포섭했다고 조국(북)에 보고했다"고 말했으나 황 대위는 관계기관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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