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단= 분단 63년사에서 남북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분야는 스포츠였다.

당국간 교류와 민간 경제협력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기류와 주변 역학에 따라 냉온탕을 들락거렸지만 체육 분야 만큼은 최근 20여년간 꾸준하게 계승 발전시켜 왔다.

남북한이 본격적으로 체육교류를 시작한 것은 1990년이었다.

양측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축구대회를 벌여 1946년을 끝으로 중단됐던 경.평축구대회를 44년만에 부활시켰다.

분위기가 고조된 남북한은 이듬 해인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처음으로 남북한 단일팀을 출전시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잠잠하던 남북체육교류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터뜨렸다.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과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이 역사적인 올림픽 개막식 공동입장에 전격적으로 합의해 지구촌 가족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시드니를 계기로 남북한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등 총 9차례에 걸쳐 국제종합대회 공동입장을 성사시켰다.

이제는 남북한이 따로 입장하면 오히려 이상할 만큼 국제대회 개막식 공동입장은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에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

올들어 남북 관계가 급속히 경색되자 IOC와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는 공동입장만이라도 성사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중재 역할을 했지만 양측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남북한은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공동입장 뿐만아니라 단일팀을 파견하는 방안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했었다.

2004년 2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가올림픽위원회총연합회(ANIC) 총회에 참석한 이연택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과 조상남 조선올림픽위원회 서기장은 베이징올림픽에 남북한 단일팀을 파견하기로 결정하고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KOC는 최초로 국제종합대회 단일팀 파견을 위해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때부터 2007년 전반기까지 북측과 4차례나 체육회담을 가졌지만 선수단 구성방안에 이견을 보여 최종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또 지난 해 10월에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베이징에 공동 응원단을 보내는 방안도 합의돼 남북체육교류가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그러나 올 해로 접어들며 남북 관계가 갑자기 얼어붙으면서 모든 논의가 중단됐다.

사실상 단일팀 구성 방안이 물건너 갔다고 판단한 KOC는 최소한 공동입장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전반기 몇 차례나 통일부를 통해 전통문을 전달하려 했으나 북측은 접수조차 거부했다.

올림픽 개막을 코 앞에 두고 남북한 선수단이 모두 베이징에 도착했지만 IOC의 중재 노력에도 체육회담은 커녕 실무자 접촉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남북한 공동입장이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양측 모두 거부했다.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공식 발표하게 됐다.

공동입장이 무산되자 BOCOG은 화합 분위기라도 조성하기 위해 입장순서를 한국은 176번, 북한은 177번째로 정했지만 북한은 이마저 거부하고 180번째로 들어와 남북관계는 말 그대로 거리가 벌어졌다.

따로 따로 국기를 들고 입장한 남북한 선수들 사이에는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시드니올림픽이후 남북한 선수들은 각종 국제대회에서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베이징에서는 눈길조차 제대로 건네지 않을 만큼 서먹한 사이로 돌아서고 말았다.

분단 55년만에 성사됐던 남북한 공동 입장이 불과 8년만에 무산됨에 따라 얼어붙은 체육교류가 언제 다시 복원될 수 있을 지도 불투명한 시점이다.

(베이징=연합뉴스)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