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지난 22일 중동과 베트남으로 해외출장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읽었을 것이다. 전날 발표한 '8ㆍ21 부동산대책'의 약발이 없다고 대부분의 언론이 비판하는데 왜 그는 편안할까?

만약 이번 대책을 접한 강남아줌마들이 미분양 아파트를 사러 지방으로 몰려갔다고 치자.재건축아파트의 매물이 자취를 감추며 급등세를 보였다면,인천 검단신도시와 오산 세교신도시 일대에 '묻지마 투자' 열풍이 보도됐다면,건설사 주가가 폭등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행정관료 30년 생활에 국가에 봉사하는 마지막 기회"라며 이명박 정부에서 6개월간 일해온 정 장관은 '강부자 (강남부자)내각'을 대변한 죄로 낙마,은퇴여행 항공편을 알아봤을 것이다.

과연 소형ㆍ임대주택 의무비율 같은 재건축아파트 규제를 화끈하게 풀지 않고 수요촉진의 핵심인 대출규제를 완화하지 않아 대책의 약발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을까?

노무현 정권 때인 2006년 말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검단신도시 개발계획을 언급했다가 주택공급 부족을 시인한 혐의로 물러났다. 2005년에는 집값 안정을 위해 추진된 판교가 거꾸로 '판교발 집값 폭등'을 유발,당시 노 대통령이 한때 판교분양 중단까지 지시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강남에 집 사면 낭패볼 것"이라는 등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해 온갖 레토릭(수사적 표현)을 쏟아내고 투기억제책을 내놓았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정권 말에 분양가 상한제,종합부동산세 강화,재건축이익환수라는 '최후의 칼'로 외환위기 이후 5∼6년간 누려온 '부동산 호황' 사이클을 잠재웠다.

부동산시장 활황기엔 수급의 이해관계자들은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정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컨대 공급을 늘리기 위해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도,거꾸로 규제를 강화해도 공급물량이 줄어 재건축아파트값이 뛸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선 상황이 다르다. 대세하락기라는 냉탕에 온수(대책)를 찔끔 섞어봤자 물은 금방 식어버린다.

반(反)노무현 정책노선을 내건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등은 부동산규제 완화나 양도소득세 경감처럼 집값을 자극할 만한 발언을 여러번 했다. 이런 시그널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미지근하다. 그만큼 금리 상승,디플레이션(자산가치 하락),미국 등 세계각국의 주택버블붕괴 동조화,무역수지 적자전환에 따른 유동성 감소 등 악재가 많아서다.

우리나라 역대 정부별 부동산 정책은 규제(박정희 정부)→규제완화(전두환 정부)→규제(노태우 정부)→규제완화(김영삼 정부) 등 규제강화와 완화를 시계추처럼 되풀이했다. 순환사이클상 김대중 정부 때는 재(再)규제에 나서야 했지만 환란(換亂)극복 경기부양을 위해 거꾸로 규제를 더 풀었다. 다시 노무현 정부는 규제를 도입할 수밖에.

결국 이명박 정부는 무주택 서민,재건축ㆍ재개발 기대층,건설사 등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규제를 풀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정구학 건설부동산부장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