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놈이 머리 좋은 놈 못당하고 머리 좋은 놈이 돈 많은 놈 못당한다.' 자조 섞인 푸념같은 우스갯소리다. '그게 밥 먹여 주냐'로 대표되는 현세적 물질주의와 과도한 목표를 설정한 뒤 서두르는 속도지상주의, 목표의 정당성을 묻지 않는 수단방법 중심주의 등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수복)

서글프고 기막히지만 곳곳에서 부딪치는 현실이다. 어른들은 그렇다 치고 요즘엔 심지어 아이들 세계에서도 이런 문법이 버젓이 통용된다는 마당이다. 방학숙제를 비롯한 과제를 돈으로 사서 제출한다는 게 그것이다.

개학 무렵이면 집집마다 아이들의 밀린 일기나 숙제 때문에 비상이 걸린다. 만들기나 그리기처럼 하루 이틀 바짝 서두르면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체험학습이나 관찰보고서,기행문,음악회나 전시회 감상문처럼 벼락치기가 불가능한 것들도 있다. 미리미리 준비하지 혼 내면서도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쓰는 게 부모 마음이다.

전같으면 그래도 엄마와 아이 모두 하는 데까지 하고 못한 건 접었다. 선생님에게 야단 맞거나 수행평가 점수를 낮게 받아도 도리 없다고 여긴 셈이다. 그런데 근래엔 이런 숙제를 그냥 돈으로 산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아이의 게으름과 그것을 단속 못한 부모의 무관심 탓도 있겠지만 숙제의 내용과 교사의 평가 자세도 무시하기 어렵다. 어떤 것이든 자세히 살피면 스스로 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파악할 수 있다. 애써 한 숙제의 점수가 돈으로 산 것보다 낮다면 아이는 교사에 대한 신뢰를 잃고 성실과 정직의 가치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숙제를 내주기만 하고 검사하지 않는 교사 또한 약속의 중요성을 잃게 만들기 쉽다. 혼자 하기 어려운 숙제라면 내주지 않는 게 맞고 내준 숙제면 세심하게 검토,부족해도 스스로 해낸 것에 점수를 줘야 한다. 성실과 정직에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거짓과 술수 편법 요행에 기대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학 숙제의 내용과 평가방법에 획기적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