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체 A사는 2005년 지방에 대형 마트를 건설하는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규제 완화가 이뤄지자 충청북도 B시에 점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B시 당국이 발목을 잡았다. 법령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것.A사의 대형 마트 설립이 재래시장 보호지침에 위배된다는 것이 B시의 논리였다.

이 안건은 법정싸움으로 번져 지금까지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상당수가 재래시장 상인들의 표를 의식해 대형 마트 입점을 막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어 지방 출점이 힘들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화공단에서 금속가공업체를 운영하는 C사장은 계획관리지역에 1만㎥ 미만 소규모 공장은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다는 규제완화 방안에 따라 공장 증설을 결심했다. 하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계획관리지역 규정을 담은 조례의 제정을 미루고 있어 공장 설립계획을 한 발짝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수도권과 광역시에 인접한 지자체들은 지난해 말까지 과거 준농림지역으로 불렸던 관리지역을 보전,생산,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화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해야 했다. 하지만 전국 지자체 148곳 중 계획관리지역을 확정한 지자체는 현재까지 7곳에 불과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일 발간한 '규제집행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중앙정부가 규제 개혁 방안을 발표해도 지자체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발목을 잡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제 개혁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전문성도 떨어지는 지자체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보고서 집필에 참여한 조성한 중앙대 교수는 "지방자치법은 지자체가 중앙정부에서 법으로 정한 내용에 반하는 조례를 만들지 못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자치사무에 관련된 조례 등을 새로 제정하는 방법으로 중앙정부의 지침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며 "관련 조례의 제정을 미루는 방법도 많이 동원된다"고 말했다.

한경연은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청와대에 규제완화와 관련된 담당 기구를 두고 지자체의 이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자체들이 규제개혁 전담인력을 충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 교수는 "최대 광역자치단체인 서울시도 규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2명에 불과하다"며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규제개혁 담당자들이 다른 업무를 겸하고 있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