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침체로 소비가 줄고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는데도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 압력은 커지고 있다. 물가가 조만간 안정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인플레이션 공포가 다시 증폭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고물가 현상) 우려도 나온다.

미국 노동부는 19일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월 대비 1.2%,작년 같은 달에 비해 9.8% 상승했다고 밝혔다. 1981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가격 변동이 심한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핵심 생산자물가지수도 전달 대비 0.7%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7월에 원자재값이 많이 뛴 결과다. 이에 따라 소비자물가도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연간 기준으로 5.6% 올라 1991년 1월 이래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 증시가 1%가량 하락하고 장 초반 안전자산에 자금이 몰리며 채권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이 빚어진 것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월가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지난달 "세계 경기가 꺾이면서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둔화될 것"이라며 연말까지 현 기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마크 파도 캔터피츠제럴드 시장전략가는 "물가 부담이 커지면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리 래커 리치먼드 연방은행 총재도 이날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여전히 위험한 수준에 있다"며 "금융시장 정상화 및 경기회복 전에라도 금리를 올려 상품 가격을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FRB가 금리인상에 나서면 신용위기로 어려움을 겪어온 월가 금융사들은 더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케네스 로고프 전 세계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대형 금융사 중에서도 파산하는 곳이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관련,"미국 등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앞으로 2∼3년 내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짓누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