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지구(경제자유구역)에서 지난 3월 한국토지공사와 인천시교육청이 협약을 하나 맺었다. 청라지구를 개발하는 토지공사가 1단계 지구 내 5개 학교부지에 건물까지 지어 교육당국에 무상 제공(기부채납)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협약체결 이후 정부 정책 등의 결정에 따른다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토공은 947억원이라는 막대한 학교건립 비용을 교육당국 대신 부담하게 됐다.

어쨌든 이 협약 덕분에 청라지구에서는 아파트 공급이 재개됐다. 분양시기는 예정(작년 말)보다 6개월이나 늦어졌다.

하지만 청라지구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학교 건립비 부담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면서 최근에는 김포 한강신도시,광교신도시 등에서도 아파트 공급 지연이 잇따르고 있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토공 등 택지개발사업자,건설사 간 비용분담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신도시 아파트 분양지연

당장 다음 달부터 3만가구의 아파트가 단계적으로 공급될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 분양일정이 차질을 빚게 생겼다. 경기도교육청이 신도시 안에 들어설 14개 학교용지를 무상공급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경기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교육청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아파트 분양승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가 '학교시설 설치계획이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한 뒤 입주자 모집공고를 승인하라'는 내용의 지침을 지자체에 통보한 이후 교육청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파트를 분양할 수 없다.

광교신도시에서 다음 달 1188가구를 첫 분양할 예정이던 울트라건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에서도 우남건설이 아파트 1020가구를 지난 6월 첫 분양할 예정이었지만 학교용지 갈등 때문에 두 달째 미뤄지고 있다.

도시개발구역 등 민간택지도 예외가 아니다. 주택건설업체들이 이미 상당수 땅을 도로ㆍ공원 등으로 무상 기부채납하고 있지만 분양승인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수백억원 규모의 학교건립비까지 떠안는 게 다반사다.

◆왜 이런 문제 반복되나

법대로만 보면 학교는 정부가 지어 공급해야 한다. 1995년 만들어진 현행 '학교용지 확보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학교용지 매입비용은 정부(교육비 특별회계)와 광역자치단체(시ㆍ도 일반회계)가 절반씩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재정이 주택공급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게 문제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만 뉴타운 개발과 함께 송파,동탄2,검단,파주,양주 등 2기 신도시 개발로 향후 4~6년간 600개가 넘는 학교를 새로 지어야 한다.

이에 따른 용지 매입비만 8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지자체들은 재정 부족을 이유로 학교용지 매입비를 제때 내지 않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한 해 예산 1조9000억원 가운데 인건비 등을 빼면 가용할 수 있는 돈은 1000억~2000억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교육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아파트 공급을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택공급이 지연될 경우 집값불안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해법은 없나

학교를 도로나 상ㆍ하수도,공원처럼 기반시설에 포함시켜 토지공사나 경기도시공사 등 택지개발 시행자가 짓도록 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의무교육 대상인 초ㆍ중학교에 한해서라도 택지개발사업자가 학교용지를 무상공급하거나 학교를 지어 임대한 뒤 일정기간 후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며 "공원ㆍ녹지 등 택지개발지구 내 무상 공급면적 일부를 줄여 땅을 매각할 경우 분양가를 올리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신도시의 경우 아파트가 입주하면 지자체에 막대한 규모의 취득ㆍ등록세 수입이 생기는 만큼 지방채를 발행해 학교용지 매입비용을 마련한 뒤 3~4년 후에 상환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