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정말 빠르게 흘렀습니다. 저요? 아직 멀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9일 부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의 10주기를 앞두고 서울 서린동 SK 본사 4층에서 열린 '큰 나무 최종현,패기의 발자취'라는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서 한국경제신문 기자와 만나 "지난 10년 동안의 성과에 대해 아직 어느 것도 만족할 수 없는 단계"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사실 10년 동안 앞만 보고 힘차게,정신없이 달려왔다"며 "하지만 오늘 고인의 추모 사진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직도 (선친의) 그늘을 벗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그게 지금 내릴 수 있는 자신에 대한 평가"라고도 했다.

하지만 지난 10년에 대해 자신에게 냉혹한 평가를 내린 최 회장의 경영 성과는 오히려 화려하다. 1998년 취임 당시 34조1000억원이던 그룹 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72조원으로 늘었다. 매출액 역시 같은 기간 동안 37조4000억원에서 82조원(올해 예상치)으로 뛰었다. 재계 순위도 5위에서 3위(자산 기준)로 올랐다. 10년 동안 그룹의 외형을 배로 성장시킨 것이다.

최 회장은 이어 고인의 정신적 유산을 강조했다. 그는 "(고 최종현 회장이) 물려준 유산은 정신적인 면이나 경영적인 측면으로 볼 때 패기와 열정을 들 수 있다"며 "요즘 말로 바꿔보면 최근 TV나 신문 광고에 나오는 '생각이 에너지'라는 개념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년간 SK를 이끌어온 최 회장은 앞으로 10년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그룹의 지주회사 체제 안정화 등의 남은 과제와 신성장 동력 확보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최 회장은 "향후 10년은 SK만의 기술로 승부 걸겠다"며 "특히 에너지,환경,생명과학 분야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실제로 최 회장은 최근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직접 뛰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대전의 SK기술원을 방문해 이틀간 SK에너지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 관련 연구.개발(R&D) 현황 및 SK㈜의 생명과학 사업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약 개발 사업에 대해 보고받기도 했다.

이날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시아버지인 고 최종현 회장에 대한 회고를 읊어 눈길을 끌었다. '사시부곡(思媤父曲)'이다. 노 관장은 "고 최종현 회장은 거목(巨木)이자 지금도 살아있는 나무"라며 "고인의 패기와 선한 생명력은 충분히 숲과 산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은 어떠한 순간에도 원칙을 버리지 않았다"며 "늘 '돈보다 정신이 앞서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기억했다. 또 "고 최종현 회장은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정신이 살아남지 못해 돈을 지키지 못했다'며 외환위기 사태를 가슴 아파했다"고 전했다.

이날 고 최종현 회장 10주기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과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김신배 SK텔레콤 사장,박영호 SK㈜ 사장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