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2008 베이징올림픽 축제로 달아오르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으며,이들의 선전 여부에 따라 환희와 탄식이 교차되고 있다. 자유형 400m 금메달에 이어 200m 은메달을 차지하며 대한민국의 수영역사를 바꾼 박태환,5연속 한판승으로 첫 금메달을 안겨준 유도의 최민호,남녀 단체전에서 2개의 금메달을 안겨준 양궁,역도의 사재혁,사격의 진종오, 이틀간의 침묵을 깨고 세계 신기록 수립과 금메달 획득이란 '퍼펙트 게임'의 쾌거를 이룬 여자역도의 장미란,배드민턴 혼합복식의 이용대ㆍ이효정….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준 금메달 소식은 고유가,고물가 뉴스에 찌든 국민들에겐 희망의 메시지와 다름없었다.

물론 믿었던 양궁 개인전,레슬링,유도 등에서 금메달 수확에 실패하면서 초반 상승세는 주춤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중국 관중의 소음 응원,심판들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메달을 놓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중국 선수가 선전하기도 했지만 저급한 홈텃세로 우리 선수들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양궁장에서의 호루라기 소리,배드민턴에서의 잇단 오심 등은 상식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을 보여주며 패배의 아픔을 극복해 냈다. 여자 양궁의 불패신화가 깨지던 날 박성현은 소음도 심했지만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내 탓'으로 돌렸다. 중국 관중의 의도적인 방해를 패인으로 꼽지 않았다. 때문에 언론과 네티즌들은 아쉬움을 접고 한국 양궁의 더 큰 발전을 기원했다.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딴 박태환은 "펠프스와 경쟁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스포츠맨십에 대해선 선수와 국민들 모두 선진국 문턱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같은 시간,정치1번지인 여의도는 후진국 수준으로 퇴보하고 있다. 18대 국회가 임기 개시 80일이 다 되도록 여야가 원 구성도 못한 채 '네 탓 공방'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실상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부분 원 구성' 카드를 꺼내들었고,민주당은 가축법에 대한 합의나 동의 없이 다음 단계로 갈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그동안 한 일이라고는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 6개 특위를 구성해 소모적인 정쟁을 벌인 것이 전부다.

더욱 한심한 사태가 8ㆍ15 경축행사 때 벌어졌다. 정권이나 정당 차원의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 기념식에 야당이 불참한 것이다. 민주당 민노당 창조한국당은 대신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찾았다. "건국절로 덧씌운 역사 왜곡이다" "광복절 행사다"는 식의 촌극에 가까운 설전도 빼놓지 않았다.

정치권의 한 치 양보 없는 정쟁으로 국민들만 골병이 들고 있다. 상임위가 구성되지 않아 민생 안정을 위한 각종 법안과 제도 등 수백 건에 달하는 현안들이 표류하고 있다. 국민의 돈으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이나 국가를 외면하는 상황이다. 경기 침체와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은 기댈 곳이 없어진 것이다. 올림픽 같았으면 당장 '레드 카드'감이다. 정치권이 박성현 선수의 '내 탓' 발언을 곱씹으며 더 늦기 전에 제자리를 찾아야 할 시점이다.

김형배 정치부장 kh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