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 말할 수 없이 초조하죠.도요타의 발빠른 행보를 속절없이 지켜봐야 하는 데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드러내놓고 얘기할 데도 없고…."

어렵사리 저녁 자리를 같이한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단숨에 비워낸 소주 잔을 한동안 만지작거리더니 "요즘 체증에 걸린 듯 속이 답답하다"고 했다. 쉽게 얘기를 꺼내지 못하던 그가 술기운을 빌어 전한 사연은 이랬다.

"도요타의 남미공동시장 법인장이 7월 중순께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을 직접 만나 투자 계획을 밝힌 뒤 브라질 제2공장 건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8만대 규모의 기존 1공장에 이어 2011년 연산 15만대의 2공장을 갖게 되면 도요타는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시장 공략에서도 멀찍이 앞서게 된다. 그런데도 현대차의 첫 브라질 공장 건립은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

그는 공장부지 확정에서부터 브라질 중앙 및 지방정부와의 협조에 이르기까지 정몽구 회장이 나서 매듭지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해외출장에 쉽게 나설 수 없는 형편이라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조심스레 '8ㆍ15 특별사면에 (정 회장이) 포함될지'를 물어왔다.

정 회장이 집행유예 기간 중이라 출국과 비자 발급,해외 입국 수속 등에서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고 있어 해외경영이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일흔 고령에도 40대 CEO처럼 왕성하게 해외를 드나들며 글로벌 경영에 매진해온 그이지만 4월 초 이후 해외출장이 뚝 끊겼다. 6월 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러시아 공장 기공식엔 중앙정부 장관과 주지사 등 많은 외빈을 초청했지만 정작 자신은 가지 못했다.

엊그제 베이징올림픽 개막식도 진작 초청장을 받았지만 법무부와 협의가 필요해 애를 태웠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100여명의 기업인이 해외 출장 때마다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다른 의견도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렇지만 기업인들에겐 글로벌 시장에서 더 열심히 뛰도록 해서 이를 통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토록 하는 게 사법 족쇄를 채워 활동을 제약하는 것보다 좋지 않을까 생각 해봅니다. " 현대차 임원의 한숨섞인 얘기가 귓전을 때렸다.

김수언 산업부 기자 sookim@hankyung.com